서울공예박물관의 모두를 위한 박물관 만들기

이진서_서울공예박물관 학예연구사

내부와 외부를 나누는 문이 없이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진입하는 서울공예박물관 전경

전시기법과 기술발전에 따른 박물관 환경의 변화와 함께 최근 전 세계적 감염병 확산으로 인해 물리적 박물관 공간의 이용에 제약이 생기면서, 박물관이 이용자와 만나는 방식 역시 크게 달라졌다. 휴관과 재개관의 반복, 축소 운영 기간이 길어지면서 물리적 박물관 공간에서 박물관 이용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었고, 국내외 박물관들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 거리로 나오거나(밖으로 나온 박물관 https://museumnews.kr/295column/), 가상세계로 들어가거나(메타버스로 메타박물관을 꿈꾸다 https://museumnews.kr/292column/), 랜선을 통해 집으로 찾아가기도 하였다. 물론 방역지침을 준수하는 가운데 어려운 환경 속에도 박물관을 찾아온 소중한 방문자들을 맞이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지난해 7월, 서울 종로구에 자리 잡은 서울공예박물관 역시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라는 환경 속에서 첫 관람객을 맞이하였다.

모두의 공예, 모두의 박물관

공예는 인간의 손으로 쓰임과 아름다움을 조화시켜 일상에 사용되는 기물을 제작하는 활동이다. 장인들이 각 시대의 요청에 응답하여 정성을 다해 만든 공예 작품은 다양한 기능과 아름다움으로 우리의 일상생활을, 넓게는 세상 전체를 이롭게 해 왔다.

공예를 주제로 다룬 국내 첫 공립박물관인 서울공예박물관은 개관 슬로건으로 ‘모두의 공예, 모두의 박물관’을 정했다. 먼 과거부터 현재까지 늘 사람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공예의 가치를 전하는 박물관이자 광화문부터 북촌까지 이어지는 문화복합단지를 연결하는 위치의 문화시설로써, 누구나 편안하게 공예와 박물관을 즐길 수 있도록 ‘문턱 없는’ 박물관 환경을 조성한다는 것은 개관 전부터 박물관의 중요한 지향점이었다. 2021년 11월 정식 개관 이후 장애인, 어린이, 고령자 등 여러 사회구성원이 공예를 통해 경험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할 수 있도록, 수집, 연구, 전시, 프로그램 등 영역에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9년 11월 국내외 박물관 시각장애인 전시 개발 전문가, 관계자가 한 자리에 모인 라운드테이블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기는 공예 전시

서울공예박물관 개관 준비와 함께 추진한 「서울공예박물관 시각장애인 전시 개발」 역시 같은 관점에서 시작된 사업이다. 시각 분야의 관람 취약자가 물리적, 심리적 장벽 없이 박물관을 일상적으로 관람하며 시각 이외의 감각으로 박물관을 만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싶다는 바람에서 추진되었다. 일상적인 관람이란 박물관이 제공하는 특수한 별도 공간 또는 이벤트에 의지하지 않고도, 시각장애인이 자신의 기호에 따라 공예의 진수를 담은 전시실과 전시물을 선택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2019년 상반기부터 진행한 사전연구와 자문을 통해, 이러한 취지를 실제 구현하기 위해서는 개별 전시물을 제작하는 차원을 넘어 전시 – 공간 – 교육 및 서비스 전체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기획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번의 기획과 개발로 마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전시 주제 ‧ 컨셉 ‧ 동선을 업데이트하며 추가 콘텐츠로 개발하고, 연계된 교육 프로그램과 이용자 서비스 기획, 온-오프라인과 아날로그-디지털 요소를 활용하는 기술적 구현까지로 확대 되어야 한다는 방향성도 주요하게 제시되었다.

사전연구와 자문 과정에서 접했던 여러 시각장애인과 특수교육 전문기관, 시각장애인 단체, 관련분야 연구자들은 많은 응원과 격려의 목소리를 보내며 서울공예박물관에 소중한 의견을 보태주었다. 공통적으로는 시각장애인을 포함해 다양한 장애를 가진 잠재적 이용자들의 박물관 향유 욕구가 높은 것에 비해 이들이 박물관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물리적 인프라는 국내에 매우 부족한 점, 어렵게 찾아온 박물관과 전시실에는 즐길 수 있는 전시 및 프로그램 콘텐츠가 양적, 질적으로 모두 미흡한 점, (전맹부터 약시까지) 장애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기 때문에 특정 기준으로 정한 장애인 이용자를 위한 박물관 콘텐츠를 제작할 때 유의해야 하는 점 등에 관한 의견이 주를 이루었다.

여러 차례 논의 과정을 거쳐 2019년 10월부터 2020년 4월까지 주요 소장품 및 상설전시를 시각, 촉각, 청각 등 다감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전시콘텐츠의 내용, 형태, 배치에 대한 연구와 계획이 진행되었다. 2019년 11월에는 국내외 전문가 및 관계자가 한 자리에 모여 박물관에서의 유니버설디자인,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시 및 교육콘텐츠의 다양한 사례와 의견을 공유하는 라운드테이블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이후 2020년 12월까지는 계획한 것을 실제 전시공간과 전시물로 구현하기 위한 설계를 실시하였고, 개관 전까지 전시 콘텐츠 제작과 수정보완 작업을 반복하였다. 이렇게 탄생한 결과물은 전시실 11개소에 고정형으로 설치된 다감각 전시대(tectile station) 14건, 음성해설 원고의 녹음본을 중심으로 한 청각형 콘텐츠 48건, 촉지도 6건이다. 전체 박물관 촉지도 3건, 건물별 공간안내 촉지도 5건 등도 함께 제작, 설치되었다.

상설전시 ‘자수, 꽃이 피다’에서 공예품의 크기, 형태, 도안을 다룬 <자수사계분경도> 촉각 전시대

다감각 전시 콘텐츠 개발의 방향성

시각장애인과 함께 전시를 감상하기 위한 다감각 전시 콘텐츠를 개발하면서 중요하게 삼았던 세 가지 방향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는, 공예의 특징을 살린 메시지와 전시기법을 담아 콘텐츠를 제작한다는 것이다. 서울공예박물관은 공예가 지닌 창조적 정신을 널리 전하기 위해 공예활동의 최종 결과물인 공예품(工藝品) 뿐 아니라 장인 의식과 시대 정신을 담고 지역과 세대를 아우르는 공예(工藝) 개념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공예역사, 현대공예, 지역공예, 어린이공예 전시와 기획전시를 운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각장애인과 함께 감상하는 전시 콘텐츠에서도 신체와 도구의 물리적 움직임이 중요한 공예 제작과정의 속성, 다양한 공예 재료나 기술 등을 전시라는 형식에 담을 수 있도록 촉각, 청각과 같은 비시각적 감각을 활용해 감상할 수 있는‘공예박물관만의 방식’을 찾고자 노력하였다. (비장애인 관람객과 마찬가지로) 박물관을 찾은 장애인 관람객에게는 ‘장애’ 그 자체보다 ‘공예’나 ‘박물관’이 주요 관심대상이며, 시각장애인 관람객에게 ‘보는 대신 만질 것을 강요하지 말고, 생각하고 느낄거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여러 자문 의견에서도 강조한 내용이었다.

둘째는, 이용자가 관람하고 싶은 전시장소와 전시물을 스스로 선택하여 감상할 수 있도록 제공한다는 것이다. 박물관에서 전시물은 의도적으로 선별된 오브제로 구성되기에, 모든 전시 콘텐츠들은 메시지와 의도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 박물관은 전시, 교육, 수집, 연구 등 모든 영역에서 일방적으로 메시지을 전달하는 위치에서 벗어나 박물관 이용자와 쌍방향 소통을 지향하며, 나아가 이용자의 적극적인 해석과 박물관 활동 참여를 돕는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 전시 콘텐츠의 경우에는 일반관람 동선과의 부조화, 장애인 관람객의 안전 확보, 전시물 관리의 편의성 등 다양한 이유로 별도의 공간, 별도의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경우를 다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공예박물관은 시각장애인 이용자의 스스로 적극적인 해석과 감상 참여를 도울 수 있도록, 실외에서 실내로 이어지는 동선에 유도블록·점자·촉지도를 설치하고, 전시물 감상에 적합한 위치에서 자동으로 재생되는 시각장애인용 음성해설 서비스를 준비하는 방법으로 조금 더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를 통해 상설전시 공간 및 주요 기획전시 공간에서 이용자가 전시물을 스스로 선택하고, 감상하며, 해석할 수 있도록 물리적 접근성을 확대하고자 하였다.

마지막 세 번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 만든다는 것이다. 영화와 드라마, 사진, 문자 등 시각적 문화 경험에 익숙한 현대 관람객에게 눈이 아닌 인지감각을 통해 신선한 경험을 제공하는 박물관 전시기법은 이미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청각, 후각, 촉각적 경험을 주는 전시기법이 담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잘 전달하는 적합한 수단으로 사용될 때, 관람객은 장애여부와 무관하게 새롭고, 멋지고, 흥미롭고, 유의미한 가치를 경험할 확률이 높아진다. 서울공예박물관의 다감각 전시대 역시 대체감각으로 전시를 감상하는 시각장애인 관람객을 위한 배려 차원을 넘어, 비장애 관람객에게도 유익한 경험을 제공하는 전시물이 될 수 있도록 그 내용과 구현 방법을 세심하게 고민하였다.

지체발달 장애인과 함께 한 공예가방 프로젝트

멋진 무늬가 프린트 된 가죽 공예가방을 매고 상설전시실을 거닐면서 공예의 재료, 도구, 기술에 대한 전시를 감상하고 있는 한 무리를 만나게 된다면, 당신은 서울공예박물관의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작해 이제는 대표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은 <SeMoCA 공예탐험대> 참여자를 마주친 것이다.

이 프로그램 운영에 사용되는 멋진 공예가방이 탄생하는 과정에는 사실 <두근두근 공예 박물관>이라는 선행 프로그램이 있었다. 공예가방의 전면 장식은, 박물관 교구 디자이너가 아니라 박물관 인근 특수학교에 재학 중인 중등 2학년생 그룹이 스탠실 기법으로 제작한 공예작품 속 문양, 공예품의 실루엣 등 무늬를 패브릭에 프린트하여 제작한 것이다. 공예가의 기술이 공예품이 되어 공예향유자의 손에서 쓸모있는 물건이 되어가는 일련의 과정과, 쓸모 있고 아름다운 공예의 다양한 가치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담긴 프로그램이었다. 다행히 이러한 기획 의도는 후속 프로그램인 <SeMoCA 공예탐험대> 참여자들에게 잘 전달되고 있으며, 때때로 세상에 하나 뿐인 이 공예가방을 구입하고 싶다는 참여자 문의도 접수되곤 한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제품으로 판매하지 않는다.)

SeMoCA 공예탐험대 프로그램 교구로 사용되는 ‘공예가방’. 가방 전면 프린트의 장식은 지역사회 특수학교 재학생과 협업하여 제작했다.

더 많은 모두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시각장애인과 함께 감상하는 전시를 준비하고, 지체발달 장애인과 함께 공예가방을 제작하고, 공예품을 관람객 휴식을 위한 벤치로 설치하는 ‘오브젝트9(Objects9)’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박물관 담장 밖 보행자를 위해 계절마다 바뀌는 전시공간 ‘크래프트 윈도우(Craft Window)’를 운영하는 서울공예박물관의 시도에 대해 함께 일하고 있는 필자가 높은 가치를 두는 이유는, 이 모든 노력들이 결국 하나의 전시, 프로그램, 공간에 참여하는 소수의 일정 인원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장애인, 어린이, 고령자 등 문화취약계층의 박물관 경험 확대는 특수한 몇몇 이용자의 전시 관람 기회 증가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지역사회 전체에 여러 긍정적 효과들을 가져올 수 있다.

우선 문화취약계층의 박물관 관람 경험 증진으로, 다른 문화예술 향유와 창작활동을 고취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시각장애인은 박물관이 제공하는 비시각적 전시 콘텐츠를 통해 직접 전시 공간을 경험하고 스스로 작품을 해석하는 기회를 얻게 되고, 이 경험은 음악, 연극 등 다른 문화예술 분야에도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려는 의지를 높일 수 있다. 어쩌면 이들이 직접 예술가가 되어 창작활동을 펼치려는 영감을 박물관이 제공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지도 모른다.

상설전시 ‘자수, 꽃이 피다’에서 같은 무늬를 여러 기법으로 표현해 질감 차이를 느끼게 한 촉각 전시대

또한 어린이와 고령자, 박물관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공유한 박물관 경험은 작게는 이들의 가족, 친구 등 가까운 지인에게, 크게는 모든 지역 공동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시각장애인이 일행과 함께 박물관을 방문해 비장애인과 같은 공간에서 전시 감상 경험을 나눈 사회적 활동은, 시각장애인과 함께 방문한 그룹의 구성원들이 서로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돕는 기회가 된다. 같은 시간에 해당 전시실에 머무른 비장애인에게도 장애인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즐긴 경험은 더 나은 관람환경 마련을 위한 인식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문화취약계층과 함께하기 위한 콘텐츠는 기존 이용자의 관람과 이용 경험 향상을 위해서도 활용될 수 있다. 대부분의 박물관 관람 활동은 진열장 안의 전시물을 눈으로 감상하고, 그래픽이나 영상과 같은 시각 자료를 눈으로 보면서 이해하는 시각 중심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각 자료를 다른 감각을 활용한 자료로 대신 설명하거나, 시각 정보를 언어적으로 표현한 음성해설 자료는 전시물을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하고 싶은 이용자, 박물관을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이용자들에게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코로나 이후의 시대(Post-Corona), 혹은 코로나와 장기공존하는 시대(With Corona)를 목전에 둔 지금, 급변한 박물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박물관 담장 안과 밖, 현실과 가상세계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도가 국내외 박물관계 전반에 걸쳐 화두가 되고 있는 지금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보면 어떨까. 지금이야말로 그동안 박물관 경계 밖에 있었던 이들을 포용하는 ‘모두를 위한 박물관’으로 모두가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좋은 기회일지 모른다. 장애인, 어린이, 고령자, 외국인, 그리고 더 많은 모두를 위한 박물관이 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