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예술혼, 지역의 문화유산이 되다 – 미래의 기억을 짓는 미술관

김보라_성북구립미술관 관장

서세옥 작품 및 컬렉션 기증협약식(2021) 사진제공: 성북구립미술관

지난해 한국 수묵 추상의 거장으로 불리는 서세옥(1929~2020) 작가가 타계하고 유족은 작가의 모든 작품과 컬렉션 3,342점을 성북구립미술관에 기증하였다. 그 규모 면에서 또한 내용 면에서 전례 없는 기증이었다. 이 기증에서는 두 가지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평생 작업에 몰두해온 작가의 모든 작품이 한 곳에 모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증된 컬렉션이 작가가 오랜 시간 창작의 터전으로 삼아 온 지역에 오롯이 귀속되었다는 것이다. 서세옥 작가는 60여 년을 성북지역에서 살았다. 70년대 중반에는 성북동에 ‘무송재(㒇柗齋)’라는 한옥을 짓고 작고할 때까지 그곳에서 선비 정신이 깃든 삶을 추구했다.

2009년 고즈넉한 성북동에 자치구 최초로 성북구립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그 무렵 우리나라 공립미술관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었지만 그 성격이 대부분 비슷했고 지역적 자산을 기반으로 미술관이 건립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당시 미술관의 특성화에 관심을 갖고 석사논문을 마쳤던 필자는 성북이라는 자치구에서 미술관을 건립한다는 소식이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간송미술관과 최순우옛집을 종종 찾았던 터라 이 마을이 예향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인식이 깊었기 때문이었다. 성북구립미술관의 아담한 건물이 지어질 무렵부터 일하게 되었는데 머지않아 이 작은 마을의 본연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서 서세옥, 최만린 두 예술가와 만나게 되었다.

최만린 미술관 조성 및 운영을 위한 협약식(2018)) 사진제공: 성북구립미술관

성북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깊은 예술의 고장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흔적들은 사라졌고 몇몇 사람들의 기억을 따라 존재하고 있었다. 성북동 초입에는 오원 장승업이 머물렀던 집이 남아있었다. 얼마 전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며 그 자취는 사라졌지만 그 곳에는 한동안 장승업의 집터라는 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소정 변관식이 ‘돈암산방’이라 부르며 살았던 집은 이미 오래 전 사라졌고 그가 마지막에 거주했던 집은 소실되지는 않았지만 표석조차 없다. 근원 김용준과 수화 김환기의 인연이 담긴 ‘노시산방’은 오래 전 허물어졌고 빌라가 들어서 있다. 그 곁에는 늙은 감나무만이 그 시간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미술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출판인 배정국의 집터가 있다. 1945년 이태준, 함석태, 김환기 등이 이곳에 모여 예술을 논했고 소전 손재형이 즉석으로 휘호한 작품이 바로 <승설암도>다. 그 멋과 풍류가 담긴 장소를 찾아갈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이 외에도 윤중식, 송영수, 변종하, 변시지, 박고석, 한묵, 이중섭 등의 미술인과 조지훈, 김광섭, 한용운, 박경리 등의 문학인, 윤이상, 금수현 등의 음악인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예술가들이 성북이라는 지역과 인연을 맺고 있었다.

이 곳은 필자가 유럽에 머물 당시 방문한 지역 중 특히 인상적이었던 남부 프랑스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피카소, 고흐, 샤갈, 마티스, 보나르, 르누아르, 세잔 등이 살았던 집과 그 인근에 미술관을 개관하고 예술가들이 사랑한 아름다운 마을로 각인되어 있는 그 모습 말이다. 그 지역은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예술적 활기로 넘친다. 숨겨진 듯 촘촘히 들어선 작고 의미 있는 미술관들은 화가들의 삶과 예술을 함께 호흡하도록 한다. 도시 속 커다란 미술관에 걸린 최고의 작품을 마주할 때와는 다른, 어쩌면 그 이상의 감동을 주는 신비하고 강한 힘이 그 곳에는 깃들어 있다.

유럽의 동경하던 마을을 성북에서도 구현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겨났다. 오히려 이곳은 우리에게 더욱 가치 있는 예술가의 마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성북구립미술관은 이러한 지역적 특수성을 담아야 할 의무가 있었고 이는 곧 미술관의 정체성이 되었다. 성북구립미술관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뼈아픈 근대사를 겪으면서 여러모로 고귀한 정신과 예술을 잃어버렸다. 안타까운 것은 해외의 유명한 화가들의 이름을 잘 알고 있는 대중들이 우리나라 근현대 예술가들은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우리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와 기회가 흔치 않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역사 속에서 쉽게 잊혀졌고 기억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못했다. 한 번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것이 지켜야 하는 이유다.

성북구립미술관은 개관 이후 줄곧 한국 미술사에 족적을 남긴 성북과 연관된 예술가들의 발굴과 전시를 지속적으로 개최해 오고 있다. 아울러 사라진 공간에 대한 기억을 회복하고 향후 복원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조사와 연구를 멈추지 않고 있다. 성북구립미술관이 축적한 한국 근현대 미술 관련 연구자료는 이미 다른 기관에도 공유되면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던 중 성북구립미술관은 지난해 새로운 기점을 맞이했다. 이 작은 미술관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신 서세옥, 최만린 두 예술가가 같은 해, 같은 달에 작고하신 것이다. 커다란 상실이 있었지만 곧 그분들이 남겨놓은 결코 작지 않은 유산에 대한 가치와 보존을 논해야만 했다. 성북구와 성북구립미술관, 그리고 유족들은 이제 지역의 예술을 보다 풍부하게 향유할 수 있도록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지점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성북구는 지난해 성북구립미술관 분관으로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을 개관하였다. 한국 현대조각의 거장인 조각가 최만린이 오랜시간 거주하며 작업했던 정릉의 집을 매입하여 미술관으로 개관한 것이다. 성북구에서 예술가의 집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은 성북구립미술관을 중심으로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작가의 숨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예술가의 집은 또 다른 감화를 주는 공간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장소가 되었다. 최만린미술관은 건립 논의가 착수되고 4년여 만에 개관하였다. 당시 최만린 작가는 126점의 주요작품을 무상으로 기증하여 미술관의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개관 직후 작가가 작고하면서 유족은 추가로 작품 440여점과 자료 2천여 점을 기증하였다.

최만린미술관 건립 사례는 다양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우선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한국 근현대 조각의 주요 작가인 최만린을 깊이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보관이 어려운 조각 작품이 다수 보존되었고 특히 작가의 중요한 작품 대부분이 미술관에 소장되었다. 다음으로 최만린 작가를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 조각을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최만린 작가가 남긴 아카이브는 한국 조각사를 비롯한 미술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며 이미 타 기관과 많은 연구자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곳은 정릉이라는 미술 소외지역에서 기존 예술가의 집을 활용한 미술관으로 지역이 예술을 기반으로 재생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했다는 건축적 의미를 포함한다. 이러한 가치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최만린미술관은 2020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러한 성과를 논하면서 예술가와 지역의 오랜 관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지역에서 한 예술가를 기리는 미술관을 공공의 자산으로 건립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 속에서 예술가들의 위상은 물론이고 지역을 향한 헌신을 간과하면 안 된다. 성북에는 40여년 동안 지속되어 온 성북장학회가 있다. 예술가들이 작품을 판매한 금액으로 장학금을 조성하여 지역 청소년들을 돕는 것이다. 이는 서세옥, 최만린 작가가 중심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여러 예술가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또한 성북구립미술관의 발의과 건립은 물론이고 지역의 문화예술과 관련된 수많은 문제들을 함께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제 서세옥컬렉션으로 다시 돌아와 보고자 한다. 서세옥컬렉션이 성북구, 성북구립미술관으로 귀속된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서세옥 작가는 생전 자신의 모든 것을 창작의 뿌리가 된 지역에 기증하겠다는 말씀을 자주 하였고 유족은 고인의 뜻을 그대로 따랐다.

서세옥 작가가 한국 문인화의 전통을 잇는 마지막 세대의 한국화가라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바이다. 수묵 추상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우리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중요한 작가로서 교육자로서 그의 업적 또한 우리나라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번 기증된 서세옥 작가의 작품에는 문인화 전통을 잇는 초기 구상 작품에서부터 작가를 가장 대표하는 인간시리즈까지 중요한 작품들로 가득하다. 또한 작업이 완성되기 전 작업으로 중요한 가치를 갖는 스케치와 초본, 서세옥 작가가 관심을 기울였던 전각과 서예, 그리고 시인으로서 적지 않은 한시를 남긴 그의 시고 작업까지 총 2천여점을 망라하며 예술가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근간을 이루고 있다. 대부분의 작품은 성북동 작업실에서 이루어졌다. 혼잡한 세상을 뒤로하고 소나무향 가득한 무송재에서 정신을 고고히 다스리며 평생 한 길로 작업에 몰두했던 예술가가 남긴 전부인 것이다.

성북구립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전에서 연설하고 있는 서세옥 작가 사진제공: 성북구립미술관

기증의 다른 한 축을 이루는 서세옥 작가가 수집한 작품들도 신중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예술가의 컬렉션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 안에는 서세옥 작업의 원천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작품들이 눈에 띈다. 영운 김용진, 근원 김용준, 소정 변관식, 소전 손재형 등 선대 작가들과 실제로 교류하면서 영감을 받았던 의미 있는 관계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그것이다. 서세옥 작가는 생전 우리 민족의 정신을 늘 강조하였다. 그 숭고한 정신이 무엇인지 깊이 있게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이 구축된 것이다. 컬렉션에는 한국작품뿐만 아니라 상해화파를 중심으로 한 중국 작품이 다수를 이루고 있고 일부 일본의 고서화와 한중일 전각도 적지 않다. 이는 보다 확대된 차원에서 화풍의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는 새로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서세옥컬렉션은 한국화의 전후 관계를 살피고 침체된 한국화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문인화에서 현대 한국화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상관관계를 파악하기 위한 귀한 자료가 될 것이다. 이는 이번 기증이 단지 서세옥 작가의 중요성만을 다루는 것이 아닌 한국화, 더 나아가서는 한중일 관계 속 확대된 근원을 거론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 이것이 서세옥컬렉션을 중심으로 연구기관이 구축되어야 하는 이유다.

서세옥컬렉션은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회생되어야 하는 예술가들을 되찾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성북 지역에서 중요한 장소들을 복원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강건한 뿌리는 수많은 가지를 내릴 수 있듯이 서세옥컬렉션이 한국 근현대 미술에 있어 하나의 중심축을 구축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져 본다. 우리가 미처 잘 알지 못하는 근현대 예술가들을 되살려 그들의 예술혼이 담긴 지역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단편적인 이해를 넘어서 영구적인 역사를 구축하는 일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성북구립미술관전시장 전경(2021화가의 사람, 사람들展) 사진제공: 성북구립미술관

최근 서세옥컬렉션의 의미를 짚어보는 기획전시가 성북구립미술관에서 시작되었다. 이제부터 미술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성북구와 지역 예술가들의 가교역학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미술관이다. 이미 성북구는 성북구립미술관을 중심으로 수많은 예술가들과의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 오랜 관계의 축적은 미래의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전승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예술가를 지역과 함께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문화유산을 정립하는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인류의 예술적 체험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마음의 감동과 정신적 정화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사람과의 다채로운 만남과 관계 속에서 삶을 채워 나간다. 그것은 직접적인 만남이 되기도 하고 간접적인 만남이 되기도 한다. 과거의 예술가와 만남이 이루어지는 향취가 깃든 공간과 작품은 시공을 초월하여 이를 향유하는 개개인에게도 의미 있는 사유를 하도록 이끌어 갈 것이다. 우리가 미처 지키지 못했던 옛 예술가들의 고귀함을 되살리고 더 많은 기억으로 이어져 후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문화적 자긍심 속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서세옥 작가의 호는 산정(山丁)이다. 이는 예술을 지키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가 선대인들의 정신을 기리고자 했던 모든 노력들을 이제 우리가 지켜가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