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소재문화재에 대한 ‘무한책임’, 외국박물관과 협력으로 풀어가다

강임산_국외소재문화재재단 지원활용부 부장

“이어서 박물관에 갔다. 바다와 땅에서 나는 물품, 날고 잠수하고 달리고 엎드린 동식물의 진품과 모형, 의복․그릇 등이 종류에 따라 배치되어 있다. 각국의 물품도 역시 모두 분류해서 배치되어 있다. 그중에 우리나라 물품을 소장한 곳도 있다. 남녀 의복과 갓․신발을 갖춘 공사(公私) 길․흉례 및 그릇의 고금 제도랑, 회화․병풍․자리 등속에 이르기까지 대략 배치되었지만, 갖춰진 것이 그리 많지 않다. 대개 널리 많이 모아서 인민의 견문을 넓혀주기 위함이다. 하지만 만들어진 지 몇 년밖에 되지 않아 아직 널리 찾지 못하였기 때문에, 구비된 것이 일본박물관에 미치지 못한다.”

1888년 2월 13일 초대 주미전권공사 박정양(1841~1905)은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 전시된 조선유물을 둘러본다. 그리고 이때의 소감을 그의 미국 방문 기록인 『미행일기(美行日記)』에 이처럼 기록한다. 1888년 1월 워싱턴DC에 도착해 클리블랜드 미국 대통령에게 국서를 전달(1.17)하고, 상주공관을 설치한 뒤 그로부터 한 달여 만에 이루어진 방문이었다. 박정양의 이 기록은 ‘서양국가에 파견된 우리나라 외교관이 현지 박물관에 전시된 우리나라 유물을 직접 보고 느낀 점을 기록한 첫 번째 내용’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운 점이 적지 않다.

당시 박정양 일기로 유추해 볼 때, 스미스소니언의 컬렉션은 한민족의 생활상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민족지적 관점’에서 수집하고 전시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박정양은 이러한 컬렉션의 구성을 간략히 열거하며 소개한 뒤, 당시로서는 생소한 ‘근대시설’ 박물관의 기능과 역할을 “널리 많이 모아서 인민의 견문을 넓혀주기 위함”이라고 간파한다. 그리고 “구비된 것이 일본박물관에 미치지 못한다.”라며 그 컬렉션에 대한 냉정한 평가도 빼놓지 않고 덧붙인다. 이런 비교평가는 앞서 그가 1876년 수신사 일원으로 일본 도쿄에 도착해 박물관도 둘러보며 그곳에 수집된 우리나라 유물들을 살펴본 경험이 있기에 가능했다. 참고로 1876년 조선 수신사 일행이 둘러본 도쿄 박물관 기록은 김기수의 『일동기유(日東記游)』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외국박물관에 소장된 우리나라 유물을 우리나라 사람이 직접 보고 평가한 최초의 기록에 해당한다.

외국박물관・미술관 한국실 설치 현황(2020.12월 현재/문화체육관광부)

1888년 초대주미전권공사 박정양 일행이 당시 둘러본 스미스소니언박물관 소장 우리나라 유물들, 그에 앞서 1876년 조선의 수신사 일행들이 도쿄의 박물관에서 접한 우리나라 유물들이 별도의 단독 공간(室)에 구분되어 전시된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당시 외국박물관이 소장한 우리나라 유물들은 현지인들에게 ‘낯선 나라’ 조선을 널리 알리는 기능과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그로부터 140년이 훌쩍 넘은 지금, 문화체육관광부 자료에 따르면 외국박물관・미술관 가운데 ‘한국실’이 별도로 설치된 곳은 전 세계 23개국 68개소에 이른다고 한다.(2021.12월 현재) 하지만 외국 박물관・미술관 내 별도의 ‘한국실’이 아닌 한국문화재를 수집해 전시한 곳까지 따지면 그 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최응천, 이하 재단)이 외국의 박물관・미술관을 대상으로 ‘한국문화재 보존・복원 및 활용 지원 사업’을 이어온 지도 올해로 9년차를 맞는다. 사실 한국문화재를 소장한 외국의 박물관・미술관을 대상으로 ‘전시환경 개선’, ‘소장유물 보존처리’ 등의 지원 사업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부 차원에서 실시되어 왔다. 외교부 산하 국제교류재단,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청과 국립문화재연구소 등이 각기 조금씩 다른 입장에서 활발히 지원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업들은 결국 “외국박물관・미술관이 소장한 우리 문화재에 대한 지원 사업을 통해 우리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현지에서 알리고, 대한민국의 국가브랜드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그 목적은 모두 동일하다.

재단의 국외소재문화재 지원 사업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재단의 지원 사업은 ‘박물관 간 교류활동’ 차원이 아닌 ‘국외소재문화재 보호에 대한 무한책임’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나아가 국외소재문화재의 보존・복원 지원을 통해 현지 한국문화재 활용기반을 넓히고, 한국문화재의 고유한 특성에 기반 한 전통적인 보존처리 기술과 재료 등의 보급으로 국제교류의 장을 넓혀가고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그간 그 존재를 몰랐던 뜻밖의 국외소재문화재 발굴은 한국미술사의 지평을 새롭게 넓히는 성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2020년 12월 미국 데이턴미술관 소장 해학반도도가 16개월의 보존처리를 마치고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돼 국내에 처음 공개되었다

2020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전시했던 미국 오하이오주 소재 데이턴미술관(Dayton Art Institute) 소장 <해학반도도>의 발굴과 보존처리, 그리고 전시에 이르는 과정이 이를 잘 보여주는 대표사례다. 재단은 2018년 미국 데이턴미술관 현지조사를 통해 이 작품의 존재를 접하고 그 상태를 확인했다. 시급한 보존처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2019년 국내로 즉각 반입해 보존처리를 실시했다. 그리고 전문가의 손에 맡겨져 약 16개월의 작업 끝에 보존처리를 마치고,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 일반에 공개될 수 있었다.

사실 데이튼미술관 소장 <해학반도도>의 실체는 그간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때문에 미국 현지의 전문가들조차 작품의 국적에 대해 이견이 분분했다. ‘중국’ 또는 ‘일본’ 국적으로 그저 추정만할 뿐이었다. 그러던 중 2017년 가을 일본 이도 미사토 박사와 우리나라 김수진 박사가 현지 조사를 통해 작품의 국적이 한국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화면의 크기만 높이 2미터, 넓이 7미터가 넘는 보기 드문 대작인데다, 종래에 찾아볼 수 없던 금박장식 바탕인 까닭에 국적을 추정하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하지만 앞서 2004년 이와 유사한 미국 호놀룰루아카데미미술관(Honolulu Academy of Arts) 소장 <해학반도도>가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조사로 확인되고, 2006년 국내로 반입해 보존처리 중 한국 국적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인 ‘입증자료’가 발견되어 두 작품 간 연결고리를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2021년 9월 벨기에 왕립예술역사박물관 소장 고려시대 유물들이 한벨수교 120주년을 맞아 수리를 마치고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돼 국내에 처음 공개되었다.

결국 이 두 건의 작품을 조사하고 보존처리하던 과정에서 지금껏 학계에 보고되지 않았던 20세기 초반 대작 금박병풍 <해학반도도>가 대한제국 시기 궁중회화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새롭게 제시되기에 이르렀다. 국외 현지조사를 통해 훼손상태가 심한 문화재를 발굴해 보존처리하던 과정에서 얻어진 의외의 결과였다. 앞으로도 이 분야의 국내외 연구는 보다 활발히 진전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재단은 올해 벨기에수교 120주년을 맞아, 벨기에왕립예술역사박물관(Royal Museum of Art and History) 소장 고려시대 도자기와 금속공예품 총 8점을 국립고궁박물관과 함께 전시할 수 있었다. 1940년대 벨기에왕립예술역사박물관이 구입한 이들 유물들은 훼손상태가 심해 마땅한 현지 활용기회를 찾지 못하고 오랫동안 방치되어 왔던 것들이다. 이를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에서 몰라보게 되살리고, 국립고궁박물관의 놀랄만한 전시 기획으로 수교 120주년의 의미를 더할 수 있었다. 이는 과거 문화교류의 산물이었던 국외소재문화재가 이제는 새롭게 ‘문화외교’의 메신저로 활용된 사례라 할 것이다. 이렇게 되살아난 고려시대 유물들은 다시 벨기에로 돌아가 “대한민국이 왜 ‘KOREA’인가?”를 현지인들에게 널리 각인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벨기에 왕립예술역사박물관 소장 고려시대 유물들은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 전문가들이 참여해 당시 모습에 가깝게 복원해 냈다.

앞으로도 재단은 외국박물관․미술관 소장 한국문화재가 훼손된 채 장기간 방치되어 멸실 또는 2차 훼손의 위험이 있거나, 혹은 잘못 복원된 채 전시 활용됨으로써 원형을 잃고 전통문화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이에 적극 대응해 나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훼손상태로 인해 현지에서 활용되지 못하고 ‘사장(死藏)’된 문화재나, 혹은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새로운 문화재의 발굴도 전문가들과 함께 해나갈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국외소재문화재를 소장한 외국 박물관․미술관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는 필수적이다.

2021년 현재까지 파악된 국외소재문화재는 22개국 총 204,693점이다. 그리고 이 통계 숫자는 우리의 현지 조사가 거듭될수록 해마다 경신되며 점차 늘어나고 있다. 비록 전 세계 각국에 흩어져 각기 다른 소장기관에 속한 우리 문화재들이지만, ‘오래전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가 ‘고유한 문화와 역사를 간직한 나라’라는 사실을 현지에서 또렷이 알리고 있다. 따라서 소유권이 그 누구에게 속하든 국외문화재를 올바로 보호하고 활용할 수만 있다면, ‘원산국으로서 무한책임’을 바탕으로 국외소장기관과 손잡고 함께 관리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