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뮤지엄, AC 뮤지엄

윤태석_국립항공박물관 학예연구본부장

BC 뮤지엄과 AC 뮤지엄의 경계

사상 유례없는 전염병 팬데믹으로 박물관 역시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초기에는 휴·개관을 반복하다가 지금은 선별적 예약체제로 돌아섰다. 대면으로 진행하던 체험과 교육프로그램도, 축소되거나 원격과 같은 비대면으로 전환되었다.

실물을 통한 직관성을 특징으로 하던 박물관의 실견적(實見的) 현장성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COVID-19)으로부터 빠른 변화를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4차 산업 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과 실감 영상 콘텐츠로, 메시지의 전달 매개는 확대되었고, 온라인 언택트로 빠르게 바뀌는 것도 박물관의 새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국제적으로는 대면 교류가 축소되면서 교류전과 같은 협업 프로젝트에도 적잖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학술행사나 회의체 운영은 웨비나(Webinar)로 빠르게 자리 잡았으며, 직원들의 근무 형태도 변화가 적지 않다. 재택근무가 상시화되었고 소통과 교감을 필요로 하는 행사 역시 줄어들어 코로나 이전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코로나 정국이 지속되면서, 박물관과 박물관 간의 괴리감은 더 커지고 있다. 국공립박물관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사립과 대학박물관은 전염병 방역 예방과 대비체계구축 여건이 열악할 수밖에 없음은 물론이다. 앞에서 언급한 비대면으로의 체계 전환과 첨단 기술을 활용한 메시지 전달 매개의 확대 등에서도 예산과 인력투입은 물론 기본적인 인프라마저 갖출 수 없어 환경이 요구하는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물관 간 격차가 심화될 수밖에 없는 여건과 몇 가지 분야이다.

관람객을 위한 편의시설인 식음료 코너나 오프라인 문화상품점은 적자가 누적되면서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외주로 운영하던 곳은 문을 닫거나 입점 계약이 종료되더라도 재계약은 물론 신규 업체의 입점도 시키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편 각국은 사실상 포스트(post) 코로나를 포기하고 코로나19를 예방하며 일상생활을 해야 하는 위드 코로나(with Corona)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우리나라도 11월부터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을 위해 정부 차원의 준비기구를 발족해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 따라서 박물관도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필자가 몸담은 국립항공박물관도 대동소이하다. 다만, 좀 더 특별한 것은 코로나로 항공업계가 어려워지면서 상호 협업을 해야 할 일이 많은 산(産)과 (館)의 관계에서 볼 때 활동에 큰 제약을 받고 있다는 점, 글로벌 콘텐츠인 항공은 국제교류가 대단히 중요함에도 이와 관련한 활동이 전면 중단되었다는 점, 생산과 정비기술, 서비스 등 핵심분야에서 이미 선진국 대열에 진입해 있는 대한민국 항공의 위상에 걸맞고 국내외 시민들의 기대 속에 항공을 테마로 한 최초의 국립박물관임에도 불구하고 개관(2020.7.5.) 이후 온전한 활동을 못 하고 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AC 뮤지엄의 현상과 과제

작금의 정국을 보면서 일부의 학자들은, 인류의 역사는 코로나19 이전인 BC(Before Corona)와 이후인 AC(After Corona)로 나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BC와 AC의 중의적 발상도 재미를 주지만, 이 같은 논리가 전혀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닌 듯해 곱씹어보게 된다. 이를 적용할 때 코로나19는 박물관에도 많은 변화를 예고한다.

첫째, 개념과 기능의 변화다. 전통적인 박물관의 성격과 역할은 물리적인 크기나 소장 콘텐츠의 수준 정도, 이를 기반으로 어떠한 서비스를 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언텍트를 통한 또 다른 형태의 박물관 구축과 전달방식은 물리적인 공간과 대면 자료의 중요도를 바꿔놓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언텍트 문화의 확산은 가상의 공간에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서 ‘어떻게 보여 줄 것인가’로 그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여줌에 있어 과거의 그것에 비해 제공자의 관점과 생각(철학), 방향, 기술 등 보다 큰 개입이 불가피해졌다는 것이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알고리즘,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블록체인 기술, 메타버스 등 4차 산업 기술도 이때 필요함은 물론이다. 우리나라에서 박물관에 대한 빅데이터는 대단히 빈약하다. 물론 콘텐츠를 전달하고 공유하는 데 박물관을 특수한 영역으로 분류하거나 박물관만을 대상으로 축적한 빅데이터만을 적용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도 빅데이터든 스몰데이터든 콘텐츠를 전달하는 매개인 소프트웨어를 가공·생산함에 있어 기초로 삼아야 함은 기본이다.

흔히 5G(fifth generation mobile communications)로 일컫는 IMT-2020은 기존 제4세대 이동 통신 기술인 4G(LTE, IMT-Advanced)보다 속도는 20배가량 빨라지고, 휴대폰에만 국한되어 연결되던 것이 모든 전자기기와 교감하면서 가상·증강현실(VR·AR), 사물인터넷(IoT) 기술 등을 구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박물관에도 큰 변화를 예고하는 지점이 아닐 수 없다.

두 번째는 박물관에도 기존의 그것에 비해 보다 다양한 영역에서 안전의 중요성이 요구되고 있다. 지금의 전염병 사태에 대비하고, 크고 작은 재난에 대처하는 위기 대응력과 이것이 가능한 시스템 수준, 구성원들의 의식 등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보다 확대해 생각해보면, 온라인 및 디지털화로 더욱 중요하게 부각된 보안과 저작권 침해, 이와 관련한 법적인 문제, 디지털 약자, 지구촌에 새로운 가치로 떠오르고 있는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실행 등도 안전의 크고 작은 범주에서 새롭게 다가오는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세 번째는 탈 외부화(Deexternalization)의 필요성 자각이다. 박물관은 소장자료를 기반으로 시민들에게 서비스하는 기관이다. 이에 따라 근래에 박물관은 이용자들의 관점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변모해왔다. 공공서비스 기관으로 각종 평가에 시민을 위한 지표가 강화되었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기기의 발달로 관람객들의 참여가 활발해진 것 역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행해야 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었다.

이에 맞물려 박물관을 거점으로 한 정부의 지원사업도 시민들의 편에서 일회성, 이벤트성의 외부활동에 초점이 맞춰진 양상을 보여왔다. 그러나 언텍트의 장기화로 외부로의 활동과 시각이 제한되면서 박물관들은 전통적인 박물관의 기능과 역할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위드 코로나에서도 전면적인 대면 활동에 일정 부분 제약을 받으며 어느 정도의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따라서 박물관 본연의 기능과 임무를 재점검하고 기본적인 역할을 회복하여 내부로부터 정체성을 확립하는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추측된다.

네 번째, 박물관에도 정부의 개입이 커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사실이다. 지구촌 각국은 코로나를 기점으로 정부의 권한과 개입이 과거의 그것에 비해 대폭 강화되고 있다. 박물관 역시 다를 바 없다. 인류 공동의 문제이며 국가적인 사안인 지금의 현상이 개체의 개별 현안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정책 당국의 법적, 정책적 개입과 지원이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따라서, 정부는 박물관이 위드 코로나 환경에서 온·오프라인이 병행할 수 있는 복합(hybrid)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힘써야 한다. 일회성 지원이 아닌 자생의 토대를 확고히 하는 데 역량을 모아야 할 시점이다. 공공(국공립박물관)과 개인(사립박물관)의 구분에 앞서 우리나라의 문화 국격과 인류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관리한다는 공익과 공공적 역할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다섯 번째는 코로나19로 빈부의 격차가 벌어진 것처럼, 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박물관 간 격차 또한 심화되고 있다. 어떠한 형태로 든 개선되어야 할 국가적인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위에서 언급한 공익과 공공적 역할의 관점에서 봐야 할 문제다. 하이브리드 체계에서 개인이 이를 개선하는 데는 더욱더 한계가 분명해 보인다. 비근한 예로, 2008년도부터 시행되고 있는 국공립박물관 관람료 무료화는 사립의 온라인 유료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관람료와 교육 및 체험비, 교구재 구매 등의 결재가 가능한 시스템 구축 등 사립의 기초적인 환경조성과 운영의 기초토대가 되는 고정비는 공공에서 지원하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 등 투명 경영을 고려해야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다는 철학을 담고 있는 ESG를 비롯한 국제적인 이슈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국립항공박물관, 국립해양박물관과 같은 공공의 박물관에 ESG는 경영평가의 중요 지표로 추가되었다. 개별 개체를 넘어 자본시장과 한 국가의 성패를 가를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탄소 배출량 감소,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 등도 마찬가지다. 박물관에도 인류 공영의 문제를 비롯한 사회적 책무는 차츰 다가올 미래임을 인식할 때가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렇듯, 전염병 팬데믹과 급변하는 지구촌 환경은 박물관에도 내외부에서 많은 변화와 대응을 강요받고 있다. 변화는 고통을 수반하는 명제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것이 비록 박물관 외부의 트렌드라고 하더라도 이를 능동적으로 읽고 예측하여 적극적인 수용을 통해 선제적으로 대안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