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선재센터] 시-코드-실Interweaving Poetic Code

<시-코드-실Interweaving Poetic Code>은 코딩과 직물의 역사 및 사회적 기능과 의미를 탐구하고 이를 시적으로 재해석한다. 전시는 올해 봄 홍콩의 CHAT(Centre for Heritage, Arts and Textile)미술관에서 진행되었던 동명의 전시 《Interweaving Poetic Code》의 후속 전시로 2021년 10월 14일부터 12월 12일까지 서울 종로구의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최된다. 서울에서 진행되는 《시-코드-실》은 최태윤의 개인 작업 및 협업, 지역 연계 프로그램의 기록을 중심으로 재구성되며 기존의 전시가 직물, 코드, 시의 관계에 주목했던 것에서 나아가 이를 기술, 공동체, 환경을 축으로 하는 돌봄의 장으로 확장한다.

전시는 시와 직물, 코딩의 연관성을 탐색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글을 뜻하는 단어 ‘텍스트(text)’와 ‘직물(textile)’은 모두 ‘엮다’라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 ‘텍세레(texere)’에서 유래되었으며 ‘시(poetry)’ 또한 형태를 만들거나 제공한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포이에시스(poiesis)’에서 파생되었다. 이들은 모두 각각을 구성하는 작은 단위의 재료가 패턴으로 엮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재탄생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한편, 직물 제조의 역사에서 자카드 직기는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했던 혁신의 상징이다. 1804년 발명된 이 기계는 구멍이 뚫린 카드에 이진법의 코드를 디코딩(decoding)하여 복잡한 섬유 패턴을 만드는 과정을 자동화했으며 이러한 이진법 구조는 현재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기초에서도 동일하게 사용된다. 초기의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군사적 용도 및 과학적 연구를 위해 개발되었으나 때에 따라서 이는 억압과 감시의 도구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오늘날 코딩은 자본주의적 맥락에서 산업 자동화의 도구가 되는 모든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기술적 기반이 되며 종종 백인∙남성∙비장애인이 주도해 온 기술 산업에서 그들의 상상력을 실현하는 도구로서 인종, 성 정체성, 장애 등에 따라 사회적 약자를 소외시키는 방향으로 적용되기도 한다. 따라서 《시-코드-실》은 직물과 코딩이 역사적으로 공유하는 수공예와 자동화, 공식과 실험, 기술과 표현을 포함한 다양한 관심사를 기반으로 하여, 이를 바탕으로 기술이 폭력과 배제, 자본주의적 방향으로 인식되고 통제를 목적으로 사용되어 왔던 기존의 방식에 전환을 시도한다.

《시-코드-실》은 최태윤과 다수의 협업자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창작 생태계이자 그 결과물이다. 프로듀서, 어시스턴트, 교육자, 학생, 활동가, 커뮤니티 등을 포함하는 이들은 지난 10년간 뉴욕, 서울, 홍콩 등지에서 비선형적으로 협업해왔으며 이는 실험적인 예술 학교, 연구 공동체, 컨퍼런스와 워크숍, 패션쇼 등 다양한 형태로 구현되었다. 이러한 창작 생태계에서 협업자의 역할은 상황과 목적에 따라 변화하며 이들은 예술계와 학계가 전문화되면서 형성된 경계와 장벽을 넘어선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맺는다. 《시-코드-실》의 예술 감독이자 참여 작가인 최태윤은 2013년 뉴욕에서 시적인 코딩을 연구하는 예술 학교이자 레지던시인 시적연산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를 공동 설립하였다.

전시에서 소개되는 <손으로 만든 컴퓨터(Handmade Computer)> 시리즈는 이 학교에서 최태윤이 전자 회로와 이진법 원리를 강의할 때 사용한 수업 교재를 기반으로 하며 이는 컴퓨터를 대량생산된 공산품이 아닌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보다 능동적이고 창의적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운드 아티스트 크리스틴 선 킴과의 협업 <미래 보증(FUTURE PROOF)>은 청각장애인이 바라는 미래의 기술과 윤리적인 지침을 제시한다. 기존에 퍼포먼스 형식으로 시연되었던 이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사운드 설치로 재구성된다. 뉴욕, 샌프란시스코, 한국의 협업자들과 현재 진행 중인 <분산된 돌봄의 웹(Distributed Web of Care)>은 지역 기반 P2P(Peer to Peer) 웹의 가능성을 제안한다. 작업은 인터넷이 지의류를 닮은 가상의 생명체가 사는 정원이라고 가정하고, 인간과 생물, 비생물의 관계를 보여준다. 더불어 이번 전시의 모티브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한국과 홍콩의 섬유 예술 전문가들과 협업하여 제작한 여러 형태의 직물 작업과 홍콩의 시각 장애인 학생들과 진행한 워크숍의 기록 및 결과물을 함께 전시한다. 다양한 매체와 협업의 기록은 최태윤의 페인팅, 드로잉, 글 등의 개인 작업과 연결되어 돌봄의 공간을 만든다.

최태윤은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거나 행하는 것들을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다시 학습하는 것, 즉 언러닝(unlearning)의 실천이라는 맥락에서 시적 연산(Poetic Computation)을 연구해왔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코딩, 직물, 시를 돌봄의 관점에서 풀어내며 그것을 사회적 실천으로 확장한다. ‘돌봄(care)’은 의료 산업에서 주로 사용되는 ‘치료(cure)’와는 대조적인 용어로 대화, 사색, 이해, 참여, 행동, 책임 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상호지원의 생태를 뜻한다. 이러한 돌봄의 양상은 주로 국가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는 커뮤니티에 의해 형성되어 왔다. 《시-코드-실》은 보다 다양하고 포용적인 미래를 위해 여성, 성 소수자, 장애인, 유색인종에 주목하고 치료가 아닌 돌봄을 위한 기술 활용을 고민하며, 모든 이들이 서로를 돌보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논의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우리는 통제의 기술을 돌봄의 기술로 전환하여 어떻게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가? 우리는 미래 세대를 위해 지구를 보존하는 기술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조직해나갈 것이며 착취에 기반하지 않고 이를 어떻게 가능하게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전염병으로 인한 세계의 급격한 변화와 동시대 삶에서 코딩의 필수적인 역할을 고려하여 과거와 현재, 미래를 어떤 방식으로 엮어 나갈 수 있는가? 《시-코드-실》은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예술적 시도로서 코드-직물-돌봄을 동시에 사유하며 관객들을 이러한 시적 경험으로 초대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