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시대, 예술로 소통하기

전승보_광주시립미술관 관장

메타가든 전시 도입부에 위치한 정문열 작가의 광섬유와 LED광원을 활용한 사이보그 <소리의 나무>

팬데믹 시대 이후에

문체부는 ‘2021년 지능형 박물관·미술관 기반조성’을 위한 ‘스마트 박물관·미술관’ 전국 104개 관(공립86개, 사립19개관) 지원 사업(VR, AI)을 지난 2월 확정했다. ‘실감콘텐츠 제작 및 체험공간 조성 지원’, ‘지능형(스마트) 박물관·미술관 구축 지원’, ‘온라인콘텐츠 제작 지원’ 등 3개 사업으로 구성된, 디지털 뉴딜 사업의 일환인 이 사업은 팬데믹 이후 침체된 박물관·미술관에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서비스 콘텐츠를 개발해 관람객에게 다가설 예정이다. 이런 사업의 하나로 광주역사민속박물관의 경우, 인공지능 도슨트 로봇 도입으로 전시 설명 서비스를 준비한다. 단지 전시실 안내 역할에 국한되지 않고 인공지능 안면인식 및 딥러닝을 통해 개개인에게 맞춤형 전시해설이 가능하며, 조명 연동형 화면 등 기존 전시안내 로봇의 한계를 보완했다. 특히 AI중심도시를 지향하는 광주광역시는 금남로4가역 지하 1층에 AI문화체험관을 개설하고 실시간으로 제작되는 나만의 ‘디지털 캐리커처’ 프로그램 등으로 인공지능 기반 문화예술 콘텐츠를 누구나 쉽게 대형 TV모니터로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그 외에도 인공지능을 활용한 ‘무형문화재 동작분석 판별 시스템’을 전국 최초로 개발하고 이를 활용한 ‘아시아공동체 전승문화 플랫폼 구축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제4차 산업혁명이 화두로 떠오른 이후, 디지털미디어와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사회 전 영역에서 급격한 변화를 주도할 것임은 누구나 예상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던, 사람들을 이끌고 가는 가장 강력한 힘은 경제적 이유와 과학기술의 발전이라고 했다. 게다가 팬데믹으로 비대면 활동과 거리두기가 일상화된 시점에 이런 인공지능을 비롯한 테크놀로지 기반 작품과 마케팅 활동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2020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된 <박물관과 인공지능>을 주제로 한 제1회 세계박물관포럼도 이를 잘 대변하고 있다.

윤제호 <휴식동굴> 속에서 빛과 소리의 파장으로 가득 찬 공간을 체험하는 관객들, 메타가든 전시실

구글아트프로젝트는 이미 전 세계의 박물관·미술관에 VR 제작을 지원하겠다고 나선 바 있다. 비록 뜻대로 순탄히 진행되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가상현실기반의 VR 애플리케이션, 버츄얼 휴먼 가이드, VR 인터랙티브 미디어, 빅데이터 기반의 분석, 머신러닝 기반의 관람객 예측, 인공지능 기반의 예술작품 분석 및 재생산, 로봇 투어 가이드(도슨트) 등’ 주요 혁신 사례들이 줄을 잇고 있다. 종래의 박물관 미술관 운영에서 미처 준비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몰아닥친 이런 양상은 문화유산 기반의 박물관은 물론, 현대미술을 주로 다루는 미술관에서 종사하는 전문 인력들도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시점, 이런 혁신적 테크놀로지 기반 활동을 제공하기 위한 운영 인력 확보가 관건이 되었으며 새로운 박물관 미술관의 사명과 의미에 대한 재정의 또한 필요하게 되었다.

요즘 태어나는 아이들은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터치(Touch)라고 한다. 20년 후 이런 세대들(디지털 네이티브 Digital Native)이 학습하는 내용과 방법들은 무엇이 될까? 여전히 박물관과 미술관이 계몽주의 시대 이후 지난 2백여 년간 차지해 온 위상을 유지할 수 있을까? 엄청난 규모의 예산과 인력의 노력과 시간이 담긴 문화유산과 창작품들이 어떻게 새로운 세대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인지, 이런 고민의 출발이 본격화되었다.

박물관의 경우, AR과 VR의 제작과 소통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전시되는 유물과 작품들이 대체로 장기간 전시되는 상설전 중심의 전시실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관람객과 1대1로 만나는 풍부한 정보와 시청각 자료들은 ‘교과서 책에서 EBS다큐멘터리로’의 이동에 견줄만하다. 게다가 홀로그램이 장착된다면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 Night at the Museum(2006년)’의 현시인 셈이다. 실제 공룡의 뼈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더 많은 정보와 영감을 얻게 되고 공룡과 함께하는 체험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미술관의 경우 박물관의 유물 상설 전시보다 효과는 덜하지만, VR과 AR을 활용한 전시로 소장품들의 가치를 한껏 올려주는 역할이 가능해졌다. 실제 공간의 전시가 없는, 가상 전시의 위력을 실제로 확인할 시간이 다가왔다.

서상희 <메타가든 속 가상정원>

인공지능의 창의성과 가능성

1990년대 초중반 무렵, 문화연구(Cultural Studies)에 입문한 인문·예술학 관계 학생들은 제작된 지 10년이 지난 ‘블레이드 러너(1982년)’에 크게 매료된 적이 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시각이미지들과 미래의 예측 가능한 다양한 문제점들을 나타낸 이 영화는 특히 인간보다 더 감성이 풍부한 레플리칸트(Replicant 유전자조작인조인간)를 통해, 인간의 윤리성을 되묻고 있는 영화다. AI 로봇은 아니지만 시사 하는바가 크다. ‘수학방정식은 철저히 경직된 기계’라고 하는데 안드로이드(Android 로봇인조인간)에 탑재된 AI는 인간보다 ‘더 정확하게(확률적으로)’ 판단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인공지능이 인간의 뇌처럼 작동한다는 생각은 아직은 영화 속 상상일 뿐이다. ‘여전히 우주에 관해 모르고 있듯, 아직 인간의 의식에 관해서조차 우리는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스튜어트 러셀)’

현재까지 알고리즘을 활용한 ‘그림 그리기’는 인공지능이 스스로 생각하고 창작한 것은 아니다. 단지 설계된 알고리즘을 통해 선택된 드로잉과 색채일 뿐이다. 아직은 기초적 설계로 독창적이기보다는 데이터 값을 짐작하게 하는 이미지다. ‘최초’라는 단계에 부여된 역사성과 희귀성으로 가격의 가치를 보는 게 타당하다. 인공지능 바둑(알파제로)과 같은, 규칙이 정해진 유형과 달리 예술적 표현에는 심리와 취향이 반영되며 AI에 인식의 변화를 반영할 방법이 아직은 없다. 자신의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하여 스스로 정의를 부여해주지 못한다면 예술의 단계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큐비즘(입체파)의 외양만을 형식으로 차용한, 인상파의 기법을 데이터만을 통해 창작한 그림들이 맥이 빠져 보이는 이유이다.

비탈리 코마와 알렉산더 멜라미드(Vitaly Komar and Alexander Melamid)는 미국인들의 취향을 연구한 후 ‘미국이 가장 원하는 그림’을 창조했다. 작가들은 설문(1,001명의 성인)을 통해 추상미술과 연두색에 대한 혐오와 푸른색(설문자 44%)과 사실적 풍경에 대한 선호를 알게 된다. 미국인들이 가장 원하는 배경은 물과 산이었다. 거기에 야생동물 사슴과 역사적 사건이 들어있으면 금상첨화가 된다. 그리고 풍경 중앙에는 조지 워싱턴이, 커다란 강 주변에는 사슴이 노닐고 있는 그림이 완성된다. 이 그림은 과연 성공한 그림일까? 인공지능을 활용한 것은 아니지만 그 원리는 ‘제공되는 데이터’에서 비롯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가장 원하는’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적 목표’가 작동해야 하는데, ‘수학방정식’과 같은 데이터에만 의존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실은 설문지의 문항들을 어떻게 설계하는가에 따라 그 답변들은 차이를 보일 것이고 그림은 달라질 것이다.

좌측 손봉채 <물소리 바람소리>, 전면 소수빈 <신-생태계의 휴리스틱>, 우측 김형숙 <근본적인 원칙>, 메타가든 전시실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을 활용한 그림에 대한 매력이 떨어진다 해서 그게 모두인 것은 물론 아니다. ‘아트 솔라리스’의 경우와 같이 개념적이고 예술사회학적 접근이 보여준 위트를 보면 그렇다. 개념적 착안과 동시대적 미학을 성공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것은 인공지능의 단계적 완성이 모두 이루어질 즈음에야 가능할 듯하다. 그리고 그때는 예술의 개념이 현재와는 달라져 있음도 물론이다. 초지능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낙관이 불러온, 창의성에 관한 성급한(결국 철학자 로봇이 되어야하며, 인간보다 더 풍부한 감성을 지녀야만 한다) 희망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다양성과 경계가 허물어진 현재의 예술은 상호관계성이 그 특징으로 나타난다. 전통적 방식인 ‘그리기’는 물론, 인공지능이 만든 사운드아트 혹은 홀로그램이나 VR 등 메타버스와 예술의 결합 가능성을 찾아가야 한다. 사실 인터넷과 디지털미디어의 발전으로 예술 분야는 첨단과학기술이 각종 ICT 콘텐츠에 접목되고 있다. 당연히 이런 새로운 예술작품들은 미술뿐만 아니라 디자인과 공연, 영상 등의 분야와 함께 K-POP, 웹툰 등과 결합하여 새로운 유통구조와 산업(2030년 1,700조 예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어린이와 학부모가 함께 찾은 마자르 전시실 전경

변화에 대한 능동적 대응 : ‘마자르 MAZAR_AR보물찾기메타가든

‘마자르’전은 지난 2020년 10월부터 1년 동안 전시되고 있는 광주시립미술관 어린이갤러리 전시이다. 어린이 발달과정을 고려해, 단순히 벽에 붙는 평면 작품이나, 이해가 어려운 작품보다는 직접 몸으로 체험하면서 미술을 경험하는 미술관 전시를 통해, 관람과 교육이 동시에 이루어지도록 체험 전시로 구성했다. 동시에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 안전 수칙도 자연스레 지켜질 수 있도록 고안된 기획이다. 마자르(MAZAR)는 AR(증강현실) 과 MAZE(미로)를 합성한 단어이다. 전시장에는 블록으로 만들어진 미로 구조물 속에서 어린이들이 길을 찾아 나가는 방식이다. 블록 재료는 작가팀 에브리웨어가 직접 개발했다. 아이들이 입에 넣어도 되는 인체에 무해한 소재로 만들어졌으며, 실제 현장에서 수집한 데이터로 어린이에게 가장 흥미를 유발하는 형태와 색깔을 갖추고 있다. 어린이에게는 미로 밖이 보이지 않아도 보호자는 어린이의 위치 확인이 용이한 높이로 디자인 되었다. 다채로운 색깔은 어린이의 인지기능, 미로를 탈출하는 과정은 문제해결 능력을 발달시키며, 수행결과에 따라 보상(홀로그램 카드)을 받는 시스템으로 어린이를 적극적으로 전시에 참여케 하고 성취감을 선사한다.

마자르 전은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기계 작동에 문제가 없었다. 작가가 공학전공의 예술가이기에 기술 부분을 스스로 해결했다. 원격으로 소프트웨어(자체 개발, 관객의 반응 데이터를 계속 관찰하면서 수정을 계속함)를 업데이터 시켜 주었으며, 취학 전 아동들도 기계만 주면 설명이 없어도 사용한다. 전시는 미로를 탈출하는 동시에, AR 기기로 우주에 흩어진 5종류의 우주 괴물 친구들(먹깨비, 소심이, 써니, 뽀꼬미, 똑똑이)을 각각 5마리씩 총 25마리를 수집하면 보상으로 홀로그램 카드를 획득하는 구성이다. 전시에 입장하면 관람객은 AR 기기를 받아서 에브리웨어가 자체 개발한 앱에 접속한 후, 미로 곳곳에 숨겨진 괴물 표식을 스캔하면 괴물을 발견하고 수집할 수 있다. 마치 ‘포켓몬고’ 게임과 같은 형식으로, 손의 스냅을 이용해서 괴물을 정확히 맞추어야 한다. 팬데믹 시대에 어떤 콘텐츠로 어린이 갤러리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한 전시이다.

어린이가 AR보물찾기를 위해 기기를 들여다보고 있다. 마자르 전시실 전경

메타_가든(Towards Meta_Garden) 전시는 오는 10월 31일까지 열리고 있다. 모두 11명의 참여 작가로 AI 및 빅데이터 기반 작품들과 디지털 영상, 설치 작품들로 이루어졌다. 현대미술에 첨단과학기술을 응용, 접목하여 ‘가상’의 예술정원을 구현하는 이번 전시는 AI,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작업해오고 있는 금민정, 노상희, 박고은, 소수빈 작가와 디지털 영상화 설치를 중심으로 한 김형숙, 박상화, 서상희, 손봉채, 윤제호, 이진준, 정문열 작가 등 11명이 참여했다. 오늘날 기술 문명이 품은 미적 상상력을 시각화하여 전시공간에 일레트로닉 예술 정원을 선사한다. 초연결, 초지능화로 특징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변화하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현대미술의 영역에 어떻게 응용되어 융·복합예술을 탄생시키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전시다. 아쉬운 점은 미술관 내 테크니션의 부재로 현장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점과 첨단매체의 활용으로 늘어난 예산 등이다. 미술관의 새로운 콘텐츠를 운영할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할 때가 되었다.

흔히 오늘날 예술가들은 점점 더 첨단기술에서 표현수단을 찾고 있고, 과학자들은 점점 더 예술에서 새로운 기술을 위한 영감을 얻는다고 하듯이 이번 《마자르_AR보물찾기》와 《메타_가든》전은 첨단과학기술과 현대미술이 한데 어우러져 새로운 감동을 펼쳐 보인다. 가상의 예술정원을 여행하면서 현실에서 훌쩍 떠나지 못하는 마음에 힐링과 위안을 얻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