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가위에는 ‘박물관’으로!

박현욱_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부장

여느 때 같았으면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박물관에 활기가 넘쳤을 텐데, 그 소리를 듣지 못한 지 오래다. 메르스 정도로 지나가겠지 생각했던 코로나 19는 2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우리의 일상을 제한된 울타리 속에 가둬두고 있다. 다중 관람시설로 분류되는 박물관과 미술관 역시 제한적으로만 관람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관람객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서울역사박물관의 경우 관람객 수를 따져보면 평상시의 약 15% 정도이다. 이러한 사정은 몇몇 예외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모든 박물관 미술관이 같은 처지일 것이다.

이유를 막론하고 15% 수준의 이용객만으로는 박물관 ․ 미술관의 역할이나 존재 필요성을 대외적으로 설득하기 어렵다. 박물관으로서도 시민이 낸 세금을 써서 땀 흘려 준비한 전시인데 넋 놓고 앉아서 관람객이 오기를 마냥 기다릴 수만도 없다. 더구나 이런 상황이 장기간 계속된다면 말이다. 그래서 박물관 ․ 미술관마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온라인으로 전시를 소개하기도 하고 가상전시관을 만들어서 온라인으로 서비스한다. 교육 역시 온라인이나 원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화상회의용 로봇인 텔레프레즌스(telepresence)까지 도입하여 프로그램 운영에 활용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상용화, 생활화는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응이 과학기술분야의 국정과제가 되면서 더욱 탄력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기술개발 · 고용창출 · 경제발전을 위해서, 기업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공공기관에서는 업무의 효율을 위해서, 가정에서는 생활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서 끊임없이 디지털 기술의 개발을 외치고 옹호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기술이 우리 생활이나 사회 활동 전반에 스며드는 일은 생각만큼 빠르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2020년 새해 벽두에 들이닥친 코로나 19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던 디지털 기술의 상용화를 촉발하였다. 학교로 등교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서비스받지 못하는 시민들을 위하여 디지털 기술은 코로나 19로 위기에 처해 있는 우리의 일상을 구해주는 구세주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디게 진행되고 있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응을 한 발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비대면’, ‘비접촉’이라는 코로나 19 방역의 기본 조건은 디지털의 기본적인 속성과 딱 맞아 떨어졌다. ‘접촉’과 ‘대면’의 제약이 없는 환경에서 디지털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제약 또한 받지 않고 자유롭게 무한대로 떠돌아다닐 수 있다. 코로나 19는 디지털이 성장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토양이 아닌가?

박물관 ․ 미술관에서도 디지털 기술의 도움을 받아 코로나 19로 현장에 오지 못하는 이용객들을 위해 온라인 서비스에 적극적으로 매달렸다. 어디 박물관뿐인가? 기업은 물론 다소 보수적인 학교, 공공기관 등에서도 빠르게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 원격이나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고, 과제물을 제출한다. 대면이나 밀집 접촉이 제한되면서 심포지엄이나 업무회의도 화상으로 진행하고 있다. 사람들은 빠르게 디지털 환경에 적응해 가고 있다. 디지털 기피증이 있는 나 같은 조모(JOMO, Joy Of Missing Out)족도 영상으로 업무회의를 몇 번 하고 나니 모여서 하는 대면 회의가 오히려 불편해질 정도이다. (디지털은 조모족하고도 잘 어울린다.)

디지털 기술은 단순히 먼 거리를 이어주는 역할만 한 것이 아니다. 코로나 19로 박물관 현장에서 기존 방식의 아날로그 전시가 주춤하는 사이에 디지털이 그 자리를 파고들었다. 2020년 5월 국립중앙박물관에 폭 60미터 높이 5미터의 3면 파노라마 연출이 가능한 디지털 실감콘텐츠 체험공간이 만들어졌다. 이뿐만 아니라 기획전시에서도 디지털 비중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최근 오픈한 국립고궁박물관의 〈안녕, 모란〉 전시 역시 도입부는 물론 중간중간 설치된 디지털 패널들이 화려한 모란을 더욱 화사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박물관 현장에서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전시연출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굳이 코로나 19 때문이 아니더라도 디지털은 4차 산업시대에 가장 널리 활용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요구 또한 디지털 기술의 사용을 부추긴다. 요즘 정치, 경제 등 사회 전반에서 주목받고 있는 2030 또는 MZ세대는 이른바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 ‘디지털 유인원(digital ape)’이다. 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기기를 자연스럽게 접한 세대로, 텍스트로 된 설명 패널보다는 디지털 영상과 이미지가 훨씬 친숙하며, 디지털 기술로 서비스받기를 원한다. 온라인으로 서비스하기 쉽다는 점도 코로나 19 상황에서 박물관이 디지털 기술에 의존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코로나 19로 이용객들은 박물관 현장 방문을 제한받고 있고, 박물관 현장은 디지털 기술에 점점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굳이 박물관에 오지 않아도 실물보다 더 실물 같은 생생한 이미지를 언제 어디서든 서비스받을 수 있다. 박물관 현장에서는 훨씬 임팩트 강한 디지털 콘텐츠가 실물을 대체하고 있다. ‘현장’에 가면 ‘실물(진품)’을 볼 수 있다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었던 현재의 박물관은 위기라고 할 것까지는 없으나 뭔가 불안하고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임에는 분명하다. 박물관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선은 사람들이 박물관 현장으로 찾아오도록 만드는 일이다. 현장에 오면 실물을 볼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호소력이 있으며, 박물관이 가진 변치 않는 매력이다. 지난 7월 20일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을 오픈한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에는 코로나 19 상황에서도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기다리며 전시를 관람한다. 이 전시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은 최근에 가장 주목받는 사회적 이슈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소위 명작, 명품의 실물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아무리 품질 좋은 디지털 영상도 실물을 직접 보고 느끼는 만족감을 넘어설 수는 없다. 콘서트홀을 찾는 것도, 좋아하는 가수의 라이브 공연이나 팬미팅에 참석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변화된 사회 환경에서는 실물만을 내세워 사람들을 현장으로 유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2030세대, 즉 디지털 유인원들의 부상은 박물관 이용객층과 사회적 요구의 변화를 예고한 것이다. 디지털 유인원들은 디지털 기술을 통해서 정보를 얻고, 그렇게 해주기를 원한다. 즉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박물관도 ‘디지털 전략(Digital Strategies)’이 필요하다. 최근 각 박물관마다 온라인 전시관을 만들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은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디지털 정보화 사회에서 적응(대응)하기 위해 당연한 것이다. 기존과 같은 방식의 전시나 정보 제공으로는 사람들을 박물관으로 끌어들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의 두 전시는 디지털 기술의 활용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디지털실감영상관〉은 콘텐츠 자체가 디지털이다. 여기에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화려한 색채와 웅장한 사운드, 3면을 장식한 스펙터클한 영상이 관람객의 시각과 청각을 장악함은 물론, 온몸을 오싹하게 만든다. 암전된 전시실에 잠시 서 있었는데도 사슴을 따라 나도 금강산 계곡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어지러움을 느꼈다.〈분청사기-백자실〉은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부분적으로 필요한 곳에서만 디지털 영상을 사용하고 있다. 달항아리 전시의 경우 배경을 디지털 영상패널로 설치하고 옛 그림을 활용하여 스토리를 입혔다. 매화 가지에 눈발이 성성한 내려앉은 추운 날씨에 벗의 초옥을 찾은 선비가 달항아리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다. 달항아리를 사이 두고 두 선비는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디지털실감영상관〉은 디지털이 목적도 되고 수단도 되었다면,〈분청사기-백자실〉전시는 유물이 주인이고 디지털은 오직 유물에 대한 이해와 미적인 체험을 돕기 위한 보조적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다르겠지만, 개인적인으로는, ‘박물관에서 디지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측면에서,〈분청사기-백자실〉에 더 이끌렸다. 무엇보다 디지털은 무한 확대와 무한 재생산 가능하다는 점에서 실체를 왜곡하기 쉽다. 왜곡된 실체는 ‘가상’이며 ‘환타지’이다. 관람객들에게 환타지를 심어주는 것이, 미래의 박물관에서는 어떨지 모르나 현재로서는 박물관까지 앞장서야 할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박물관도 사회 속에 존재하는 한 사회적인 요구와 유행을 무시할 수는 없다. 박물관의 지향점과 사회적인 요구가 다를 때 갈등도 불가피하다. 대체로 사회적 요구는 유행과 편의를 좇고 있으며, 그 유행과 편의가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때로는 반대 방향으로 흐르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이 달달한 초콜릿을 좋아한다고 초콜릿만 준다면 도대체 아이들의 건강은 어떻게 되겠는가? 디지털이 제공해주는 속도와 편의가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인지 이빨을 썩게 만드는 달달한 초콜릿인지에 대해 박물관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 못지않게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4차 산업과 디지털 정보화 사회에서 우리는 ‘디지털 홍수(digital-saturated)’에 휩쓸려 가기 십상이다. 이제는 사람과 스마트폰은 잠시도 분리될 수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와이파이(Wi-Fi)가 터지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은 금단 현상을 일으키듯 불안해한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중에 디지털에 중독된 것이다.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 디지털에 중독된 현대인들에게 치유가 필요하다는 역설적인 용어이다. ‘디지털 디스토피아(digital dystopia)’, 디지털은 인간의 모든 행동을 통제하고 드려다 본다. 한마디로 디지털 판옵티콘(panopticon)이다. 코로나19는 이것이 소설이나 영화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실증했다.

아날로그로의 귀거래사를 말하고 싶지는 않다. 가능하지도 않다. 그러나 디지털 디톡스를 위한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아날로그인 것은 분명하다. 데이비드 색스는《아날로그의 반격》에서 ‘아날로그 경험은 디지털 경험이 주지 못하는 실제 세계의 즐거움과 만족감을 주지만, 때로는 디지털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내놓은 최고의 솔루션’이라고 했다. 박물관의 속성은 기본적으로 아날로그이다. 박물관은 디지털의 거대한 사막 한 가운데서 휴식할 수 있는 아날로그 오아시스이다. ‘0’과 ‘1’로 표준화된 디지털 기술이 보여주는 대로, 누구나 똑같이 개성 없이 보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느끼고 싶은 대로 느끼는 것이 가능한 곳이 박물관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번 주말에는 디지털로부터도 잠시 벗어날 겸 더위도 피할 겸 가까운 거리를 걸어서 박물관을 찾자. 올 한가위에는 ‘박물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