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영롱: 유리가 들려주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이야기 ②

고재현_한림대학교 나노융합스쿨 교수

“투명”을 향한 지난한 여정

유리라 하면 우리가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올리는 이미지는 투명함이다. 창 너머의 세상을 아무런 왜곡 없이 그대로 전달해 주는 투명성이야말로 유리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러나 위에 서술했듯이 과거의 유리는 기술적 한계로 인해 어느 정도 색상을 띨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투명하게 만들려 해도 유리를 만드는 원료에 불가피하게 포함하고 있는 철로 인해 약간은 푸른색을 띨 수밖에 없었고, 일반적으로는 어두운 색을 띠었다. 광학 유리라 부를 정도의 투명도를 가진 유리가 처음으로 제작된 무대는 15세기 유리 장인들이 모여 있던 이탈리아 무라노(Murano) 섬이었다. 그들은 순도가 매우 높은 모래를 선별해 원료로 사용, 크리스탈로 글라스(crystallo glass)라 불리는 투명 유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뒤 17세기에 고순도 석영에 산화납을 포함한 납유리(flint glass)가 개발되어 본격적인 광학 유리의 시대가 열렸다.

갈릴레오의 망원경
갈릴레오가 당시 고위층을 대상으로 망원경을 시연하는 모습

투명한 유리를 만드는 제작 기술의 발전은 과학의 진보를 이끄는 견인차였다. 갈릴레오의 망원경에 사용된 유리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이상론이 가리고 있던 우주의 비밀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시발점이 되었고 이런 과학적 전통은 오늘날 10m를 훌쩍 넘는 거대한 구경의 망원경의 개발과 활용으로 이어진다. 뉴턴이 빛의 본성을 밝히는데 사용했던 프리즘, 미시 세계로 향하는 도구였던 레벤후크의 현미경 역시 투명한 유리가 없었다면 존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렌즈나 거울, 플라스크 등 과학자, 공학자의 연구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유리로 된 다양한 실험 도구와 장치들은 과거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과학 연구에 있어서 유리라는 물질이 차지하는 위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러나 과학계에 종사하지 않는 일반인들로서야 유리는 창문과 같은 건축자재, 조명등의 껍데기, 각종 그릇이나 용기 등의 이미지로 다가갈 것이다. 하나, 오늘날 정보통신 문명의 근간, 통신 하드웨어의 중심에는 유리가 있다. 이는 정보를 시각적으로 표시해 주는 디스플레이나 태양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변환하는 태양 전지판의 얼굴이 거대한 유리 기판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오늘날 빛의 펄스를 이용해 정보를 전달하는 고속도로인 광통신망의 구축에는 유리의 진화가 결정적이었다. 남극을 제외한 전 세계를 연결하는 거대한 광통신 네트워크는 현대 IT문명을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기반들 중 하나다.

(왼쪽) 투명 아크릴로 만든 다중 모드 광섬유 속으로 넣어 준 레이저빔이 내부전반사를 통해 진행하는 모습. (오른쪽) 광섬유의 개략도 및 (아래) 실제 광섬유의 모식도.  

광통신용 케이블의 한 가운데 있는 광섬유는 빛을 전달하는 코어(core)란 유리를 클래딩(cladding)이라는 유리가 감싸는 구조를 가진다. 굴절률이 약간 더 큰 코어 속으로 적외선 펄스 신호를 넣어주면 이 빛은 코어와 클래딩의 계면에서 반복적으로 반사되며 광속으로 정보를 나른다. 유리를 실처럼 뽑아내는 기술이 발명된 것은 100년 가까이 되지만 이것이 빛을 나르기 위해서는 한 차례의 커다란 변화가 필요했다. 이 경우에도 문제는 순도였다. 초기의 광섬유는 투명한 유리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순물의 농도가 높아 빛을 금방 흡수해 버렸다. 따라서 장거리 통신용 광섬유가 구현되기 위해서는 불순물이 극도로 낮은 유리의 개발이 필요했다.

이런 기술적 도약은 오늘날 광통신의 아버지라 불리는 물리학자 카오(Sir Charles Kuen Kao, 1933-2018)에 의해 초석이 다져졌다. 그는 광섬유를 구성하는 유리 내 빛의 손실 메커니즘을 정밀하게 분석한 후 순도가 높은 석영 유리를 광통신의 후보 물질로 제시했다. 2009년 노벨물리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한 카오 및 그와 협력해 진전을 이루어 낸 여러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우리는 오늘날 초고속 통신망이라는 문명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 순수한 유리, 더 투명한 유리를 얻기 위한 인류의 기나긴 여정이 극도로 순수해 빛을 거의 흡수하지 않는 유리의 개발로 이어지고 이에 기반하여 거대한 광통신망의 구축에까지 도달하게 된 것이다.

미래를 여는 물질, 유리

지난 5월 열린 유엔총회에선 2022년을 ‘국제 유리의 해(International Year of Glass)’로 선포했다. 그만큼 유리가 현대 문명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중요성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가 높아진 것이다. 유리가 없는 세상, 즉 창문이 없는 건물, 조명이 없는 실내, 디스플레이나 투명한 그릇이 사라진 세상을 상상해 본다면 유리가 우리의 생활에, 산업에, 그리고 인류 문명에 얼마나 넓고 깊이 뿌리박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게다가 유리 기술의 지속적인 발전은 현재의 우리를 새로운 기술, 새로운 과학, 그리고 새로운 문명으로 안내해 가는 길잡이가 되고 있다. 접을 수 있는 디스플레이의 등장에는 구부려도 깨지지 않는 고강도의 초박형 유리가 기술적 근거가 되었다. 유리의 매우 강한 내부식성, 내열성, 내화학성 등은 장기간 보관해야 하는 핵폐기물의 저장 용기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공학적으로 매우 강한 재료로 주목받았으나 엄청난 냉각 속도가 필요하기에 유리 형성이 쉽지 않았던 금속 유리(metallic glass)의 합성, 응용 연구 역시 많은 진척이 이루어지는 분야다. 빛을 단순히 투과시키거나 내부 소자를 보호하는 등의 수동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환경에 따라 색을 바꾸거나 스스로 표면을 청소하는 유리와 같은 스마트 유리에 관한 연구도 매우 활발하다. 과학자들이 꿈꾸는 미래의 유리는 가령 이런 것이다. 낮에는 태양 에너지를 모으는 투명 태양 전지로 기능하거나 주변 환경에 맞춰 스스로 색상을 조절하며 방열을 담당하다가 밤에는 저장된 에너지를 이용해 대면적 디스플레이나 은은한 조명으로 변하는 유리. 50여 년 전 만화에 등장했던 많은 공상과학 소재들이 현실화된 요즘, 과학자들이 꿈꾸는 이런 스마트 유리가 조만간 등장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섣부른 예측일까?

플렉서블 유리가 적용될 수 있는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기술(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Flexible_display.jpg)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유리로 된 유물들은 사실 왕이나 귀족과 같은 지배층의 전유물이었다. 일반인들이 유리를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파고 속에서 유리 생산의 자동화가 이루져서야 가능해졌다. 이제 유리는 너무나 흔한 물질이 되어 버렸다. 공기처럼 흔하지만 공기처럼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불가결한 물질이 된 것이다. 오색영롱 특별전에서 마주친 유리 유물들의 빛깔은 내게 끊임없이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이 유적들을 비추는 조명, 유물을 보호하는 특수 보관함, 특별전의 의미를 설명하는 벽면의 디스플레이는 현대 문명 속 유리를 상징한다. 그리고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진 유리의 이야기는 우리의 상상을 미래로 펼치게 해 준다. 모처럼 찾아온 유리 유물의 특별전, 유리가 펼치는 과거-현재-미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