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영롱: 유리가 들려주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이야기 ①

고재현_한림대학교 나노융합스쿨 교수

올해 초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오색영롱, 한국 고대 유리와 신라>란 주제의 특별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한 필자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유리(glass)는 필자가 오랫동안 학문적으로 연구해 온 물질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측하기 힘든 팬데믹 상황 속에서 춘천에서 경주까지 이동하기가 쉽지는 않아 결국 관람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쉬움을 달래던 차에 필자가 사는 춘천의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오색영롱 – 유리, 빛깔을 벗고 투명을 입다>란 특별전이 열린다는 소식은 가뭄 속 단비와 같은 반가움으로 다가왔다.

지난 6월 하순, 팬데믹 속에서 어렵게 마무리된 대학의 종강을 뒤로 하고 국립춘천박물관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국보 제193호인 남분 유리병을 포함하여 특별전이 열리는 공간은 다양한 유리잔과 유리구슬이 발산하는 아름다운 색깔의 빛으로 가득 찼다. 그 빛은 현재에 발 딛고 선 관람자들을 아득히 먼 과거로 데리고 가는 타임머신이었다. 그러나 이 과거로의 여행은 역설적으로 우리를 미래로 연결해 주는 여행이기도 하다. 이번 특별전의 키워드인 “유리”, “빛깔”, 그리고 “투명”이란 세 단어를 중심으로 유리라는 특이한 물질이 과거-현재-미래를 어떻게 연결하는지 짧은 여행을 함께 떠나보도록 하자.

물질의 네 가지 상태(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State_of_matter)

우리가 보는 물질은 모두 원자, 그리고 이 원자들이 결합해 만든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같은 원자나 분자들이 모여 만든 물질이라 하더라도 온도와 압력에 따라 나타내는 상태나 원자/분자의 배치는 달라진다. 예를 들어 섭씨 30도, 1기압의 조건에서 물분자들은 물이라 부르는 액체 상태가 된다. 여기에 에너지를 가해 섭씨 100도까지 온도를 올려야 수증기라 부르는 기체가 된다. 반대로 한겨울 온도가 섭씨 0도보다 더 떨어지면 물은 얼어서 딱딱한 고체인 얼음이 된다. 이처럼 물질이 존재하는 상태나 방식을 물질의 상(phase)이라 하고 고체-액체-기체로 상이 변하는 현상을 상전이라 부른다.

석영 유리(왼쪽)와 석영 결정(오른쪽)의 2차원 모식도(출처: 위키피디아)

그렇다면 유리는 이 중 어느 상에 속할까? 만지면 딱딱함을 느끼니 고체인 듯싶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고체라 부르는 결정(crystal)과 유리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결정에 속하는 얼음 속 물분자들은 규칙적인 배열로 정렬해 있다. 흡사 운동장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규칙적으로 도열한 군인들처럼 말이다. 반면에 액체 속 물분자들은 어지럽게 사방을 돌아다니며 끊임없이 무질서하게 움직인다. 비유하자면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서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초등학생들과 비슷하다. 만약 이 학생들에게 장난삼아 “얼음!”이라 외치면 무질서한 위치의 학생들이 제자리에서 모두 멈출 것이다. 바로 이 상태, 즉 원자/분자들이 무질서한 위치에서 그대로 얼어버린 상태가 바로 유리에 해당한다. 강도로 따지면 결정과 비슷하나 원자들의 배치가 무질서하다는 면에서는 액체와 비슷한 이상한 고체가 바로 유리다.

액체를 서서히 냉각하면 보통 액체 속 원자나 분자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되는 결정이 된다. 그러나 액체를 급랭하면 액체 속 무질서한 배열이 그대로 굳어버리며 유리가 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유리 상전이 과정이라 한다. 유리로 예술 작품이나 공예품을 만드는 예술가나 장인들은 이런 유리 상전이 과정의 성질을 경험적으로 체득하고 활용한다. 녹은 유리물을 적당한 틀에 넣어 굳히거나 속이 비어 있는 대롱 끝에 붙여 불고 돌리며 모양을 만든다. 후자의 대롱불기 기법은 이미 기원전 중동이나 인도 지역에서 유리 성형에 사용됨으로써 유리 제품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오색영롱전에서 많이 전시되었던 유리 구슬은 한반도에서 가장 많이 출토되는 형태라 한다. 부드러워 적당한 점도를 가진 유리물을 금속봉에 여러 번 감거나 속이 빈 금속막대 끝에 유리물을 묻히고 철심으로 밀고 꼬챙이로 잡아당겨 유리 구슬을 제작했다고 한다. 혹은 만들고자 하는 형상을 가진 거푸집에 유리의 원료를 넣고 가열해 만들기도 하는데 한반도에선 기원 전후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리 거푸집이 다양한 유적에서 발견된 바 있다.

기원 전후의 사람이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로 올 수 있다면 그에게 오늘날의 문명은 이해불가의 세계로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물질이나 제품이 하나 있다. 바로 유리다. 오늘날 어른 키보다 훨씬 큰 면적의 유리 제품을 포함 최첨단 유리 제품들도 제작하는 방법은 지난 수천 년 동안 인류가 사용해 왔던 방식과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세련됨이나 정확도의 차이야 있지만 유리의 원료가 되는 재료들을 혼합해 녹이고 적당한 방법으로 식혀 굳히는 것이다. 그것이 자동화된 대롱불기 기법이든, 액체 금속 위에 유리물을 띠우는 플로트(float) 공법이든 아니면 디스플레이용 유리 제작에 사용되는 퓨전(fusion) 공법이든 말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평범한 창유리나 유리 용기들은 전시관에 전시된 유리 유물들과 형제인 셈이고 우리를 인류의 과거로 연결시켜주는 타임머신이라 할 수 있다.

유적에서 출토되는 유리는 보통 다양한 색을 띤다. 오색영롱에 전시된 유물들도 예외는 아니다. 국보로 지정된 남분 유리병을 포함, 다양한 유리병과 잔, 구슬 등은 오묘하고 다채로운 색상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먼 과거에 만들어진 유리 제품들이 색상을 나타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과거의 제조 기법으로는 투명한 유리를 만드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유리가 색상을 띠는 원인은 제조 공정 중 다양한 불순물이 들어가기 때문이고 그만큼 순도가 높은 유리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물론 의도적으로 다양한 착색제를 넣어 특정한 색상을 나타내게도 했고 착색제의 종류가 유리의 색상을 결정했기에 이는 유리 제작의 레시피에 반영되었다. 의도적인 불순물(착색제) 투입을 통해 다양한 색을 나타내는 방식은 스테인드 글라스를 포함, 다양한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왔다.

그럼 색이란 무엇일까? 사실 색은 인간의 인지와 시각 체계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눈의 망막 속 시세포가 빛에 대해 반응하는 정도를 뇌가 해석해 밝기와 색상으로 인지하는 것이다. 사물의 색은 보통 반사색과 투과색으로 나눈다. 햇빛이나 조명 빛처럼 무지개색이 고르게 섞여 있는 백색광은 사물에서 반사되거나 투과될 때 특정 색상 대역이 흡수되고 나머지가 반사되거나 투과되며 물체의 색을 만든다.

노란색 잉크에 빨강, 녹색, 파랑이 고루 섞인 백색광이 입사된 후 파란색 빛만 흡수되고 빨강과 녹색 빛이 반사되고 섞여 사람 눈에 노란색 빛으로 인지되는 과정.

예를 들어 노란색 잉크가 있다고 하자. 이 잉크는 입사되는 백색광 중 파란색 대역을 흡수하고 녹색과 빨간색 빛을 반사한다. 두 색은 섞여서 우리 눈에 노란색으로 인식된다. 노란색 유리잔은 어떨까? 마찬가지다. 유리를 통과해 지나가는 과정 중 파란색 빛만 흡수되고 녹색과 빨간색 빛은 통과되어 눈에 들어온다. 전자는 반사색이, 후자는 투과색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이처럼 외부 광원의 빛(주로 백색광)을 받아 특정 색상 대역을 흡수하고 나머지를 반사 혹은 통과시키는 방식으로 색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감법혼색이라 한다. 기본적으로 모든 미술작품, 공예품을 포함해 사물의 색이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착색제가 포함된 유리가 특정한 색깔을 나타내는 이유는 뭘까? 물질의 색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은 20세기 들어 현대물리학, 특히 양자역학이 확립된 후에야 가능해졌다. 모든 원자나 분자 내 전자는 모든 에너지를 갖지 못하고 특정한 에너지 상태들만 가질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허용된 에너지 상태 사이에서만 전자들이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원자나 분자는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받을 때 특정한 에너지만 골라서 흡수한다는 것이다. 외부 에너지가 빛의 형태로 입사된다면 원자나 분자는 특정 색상의 빛에만 반응해 흡수하는 대단한 편식쟁이인 셈이다. 이런 원리에 기반해 수천, 수만 종의 염료와 안료들이 개발되어 활발히 사용될 수 있었다. 중세의 성당과 교회를 풍미했던 스테인드 글라스 역시 유리에 넣어주는 금속 입자의 종류와 크기에 따라 흡수되는 색상이 달라지며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남을 수 있었다.

사르트르 대성당(오른쪽)의 스테인드 글라스(출처: 위키피디아)

우리의 선조를 포함, 유리를 다루던 장인들 역시 이런 원리를 경험적으로 체득한 후 다양한 색유리를 구현하는 것에 활용하여 온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우리는 화학적 분석을 통해 특정 색의 고대 유물 속에 어떤 착색제가 사용되었는지를 알고 있다. 가령 산화구리는 선명한 하늘색을, 이산화망간은 연두색을, 구리는 붉은색을, 그리고 철은 공정 조건에 따라 황갈색이나 청록색을 만든다. 경우에 따라서는 화학 성분을 분석해 유리 유물의 생산지를 추적하기도 한다. 오색영롱이 열리는 전시장 공간을 가득 채운 특별한 빛깔들은 결국 빛과 유리 속 착색제 사이의 상호작용이 빚어내는 빛의 마술인 셈이고 수천 년의 세월을 이겨내며 여전히 은은한 아름다움을 뽐낸다는 사실 또한 내게는 또다른 빛의 마술로 느껴졌다.


다음호(291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