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 뮤지움 : 온라인 미술관 플랫폼과 관객경험 – 일민미술관 Fortune Telling: 운명상담소 전시를 중심으로

조주현_일민미술관 학예실장

“환영합니다. 우리는 다종다양한 사람들의 세계를 운명의 눈으로 연구하고, 해석해드리는 ‘Fortune Telling Center’입니다.”

1. ‘탐험소통성취의 과정 : 현실을 재구성하는 시뮬레이션 모델로서의 전시

커다란 부적을 연상시키는 노란 현수막에 “운명상담소”라는 글자가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운명에 대해 궁금해한다. 내 맘대로 일이 풀리지 않고, 누구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 답답한 현실을 마주한 사람은 그 상황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누군가 지금 나의 마음을 읽어주고, 위로의 말 한마디를 건넨다면? 다시금 내 앞에 희망의 빛이 비친다고 느낄 것이다. 한순간의 눈빛 교환과 정서적 상호작용이 개인의 운명을 바꾸는 힘으로 작용한다. 코로나 19 이후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이전보다 훨씬 불안정해졌음을 감지한다. 기존의 모든 시스템과 패러다임이 거대한 변화를 예고하며 사회 경제가 급격하게 변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변곡점에 선 사회에서 사람들은 변화의 방향을 정확하게 인지하기 어렵다. 무엇을 목표로 나아가야 하는지조차 감을 잡기 어려운 ‘방향 상실’의 상태에서 느끼는 불안감은 불가항력과 같은 미지의 세계인 ‘운명’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일민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시 《Fortune Telling: 운명상담소》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길을 잃은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고민하고 미래 좌표를 찾아가며 자아를 발견해나가는 연극적 상황을 하나의 ‘시뮬레이션 모델’로 제시하는 새로운 형식 실험이다. 이 전시의 Part 2 <상담소>는 커뮤니케이션 게임 형식을 차용해 오프라인 전시공간 안에서 관객 스스로 전시의 주인공이 되어 상황을 주체적으로 탐험해나가도록 구성했다. 마치 온라인 게임처럼 전시실에 입장한 관객 개개인이 다른 관객 또는 상담사, 안내원과 대화하며 능동적으로 발화하고 행동해야 비로소 전시가 시작된다. 적극적으로 탐험하지 않는 관객에게 전시는 작동하지 않는 상태로 정지해 있다. 반대로, 관객 스스로 전시의 구성을 선택하고, 작품마다 주어지는 미션을 수행하며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해나가는 과정 그 자체가 예술적 성취감을 부여한다.

작년 한 해 대다수 미술관 전시는 디지털 플랫폼으로 전환되어 온라인 기반의 다양한 예술적 실험과 정보를 생산해냈다.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으로 관객 유치가 어려워지자, 주요 미술관에서는 전시 현장을 VR로 제작해 공개하고 큐레이터의 전시해설을 유튜브 채널에 선보였다. 해외의 전위적인 예술 공간들에서는 UX디자인과 스트리밍 서비스를 결합한 온라인 전시가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한편, 코로나 상황에서 쏟아진 온라인 전시와 정보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이들은 진정한 예술적 경험은 물리적 환경에서 가능하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나온 온라인 전시 플랫폼들에 대한 비판적 대응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면 전시는 어떠한 새로운 예술 양식을 구축해야 할 것인가. 이 에세이에서는 코로나 이후 미술관 전시의 새로운 모델로서 본 전시의 <상담소> 공간의 특성을 분석하고,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의 경계가 사라진 메타버스의 기술적 배경이 어떠한 예술적 비평을 가능케 하는지, 그리고 사회적 재난과 위기로 인한 방향 상실의 시대 예술이 할 수 있는 역할과 잠재력은 무엇인지 논의하고자 한다.

2. 프레임이 사라진 예술 : 업데이트된 관계적 프로그램과 실행적 리얼리즘

컴퓨터 사용이 보편화되고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했던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미술계에서는 새로운 예술 양식으로서 ‘관계적’ 접근법이 등장했다. 당시 예술가들은 걷잡을 수 없는 네트워크 발전의 흐름 속에서 오히려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내밀한, 사적인 인간관계를 위한 “마이크로-유토피아, 사회적 조직체 안에 열린 틈”으로서의 공간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틈’의 공간은 이들의 새로운 예술적 방법론인 ‘관계적 프로그램’에 따라 작동했다. 이때 관계적 프로그램이란 오늘날 “인간관계를 생산하는 데 알맞은 사회성의 모델들을 구성”하는 일종의 ‘플랫폼’으로서의 예술 형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다시 말해, 관계적 프로그램에 의해 작동하는 예술작품이란 하나의 ‘기능적인 모델’로서 사회 경제적 장 안에서 가상적인 개입에 의해 생산되는 예술을 의미한다.

이밖에도, 20세기 후반 인터넷이 대중적으로 보급된 이후 지금까지 온라인 전시 플랫폼과 디지털 환경에서의 예술 실험은 끊임없이 발전되어 왔다. 사실 우리는 코로나 이전에도 메타버스의 세계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사람들은 기존에 존재했던 가상 세계 이상의 것을 찾기 시작했다. 가상세계와 물리적 현실 세계의 연결이 더욱 강화되고 메타버스 내의 활동이 현실 세계의 삶의 패턴, 사회 구조, 경제 등에 다양하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각종 지도 서비스와 길찾기, 음식 배달 앱 등은 우리의 일상적 삶을 가상 세계로 확장시키고 통합시켰다. 비대면 상황과 대면 상황의 차이가 없어지며, 현실세계와 메타버스의 경계도 조금씩 허물어졌다. 이제 그것은 우리 삶의 새로운 기준, ‘뉴노멀’로 자리 잡았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일상적 패러다임에 큰 변화를 가져왔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타인과의 접촉과 관계를 꿈꾼다. 내밀한 공간에서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줄 대상이 필요하고, 내가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면서 관계 안에서 성취감을 맛보는 순간을 원한다.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게임은 현실 세계에서 충족되지 않는 감정적 보상이나 불가능의 경험을 가능하게 만들 뿐 아니라, 사회적 모순과 위기를 스스로 극복하고 변화시켜 나가는 시뮬레이션으로 현실의 경험을 확장시킬 수 있다. 이러한 점에 착안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새로운 예술 양식을 실험한 《Fortune Telling: 운명상담소》는 시뮬레이션 게임을 제안한다. 게임의 형태로 구축한 전시 플랫폼들은 우리가 쉽게 인지할 수 없거나 가시화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일종의 관측소이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운(Fortune)’을 주제로 하는 이 전시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으로 다양한 개체들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자연스레 연출된다. 전시장의 관객들은 상담가를 만나 자신의 운명에 대한 답을 찾고자 다양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는 여정을 떠난다. 그러나 게임 플랫폼처럼 작동하는 전시는 운명과 미래 좌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관객으로 하여금 동시대를 살아가며 마주하게 되는 기회의 불평등, 부의 불평등과 같은 사회 현실을 시뮬레이션하여 경험케 한다. 즉, “제한된 기회”라는 조건이 전시 안에서 주어진다. 관객들은 기회를 얻기 위해 줄을 서고, 자신에게 주어진 운을 상승시키기 위해 협력하고, 자신의 운을 타인과 교환하며 즐기고, 화내고, 당황한 채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다른 누군가의 운명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을 직접 목격할 수도 있다. 사람들의 대화, 움직임, 표정, 제스처에 따라 매 순간 달라지는 이 퍼포먼스와 연극적 상황 속에서 관객은 퍼포머인 동시에 관찰자가 되며 지속적인 역할 교환을 수행하게 된다.

이 전시의 핵심은 전시 공간이 프레임 안팎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실재와 가상, 현실과 전시장, 관객과 대상을 구분 짓는 일반적인 전시의 메카닉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관객은 자신이 퍼포머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타인의 시선의 대상이 된다. 관객 스스로 트루먼쇼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상황은 하나의 시뮬레이션 모델 속에 관객을 몰입시키고 행동을 유발할 수 있는 강력한 조건을 생성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관객은 진정한 나 자신과 대면하는 ‘의외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프레임이 사라진 예술은 혼란과 뒤얽힘, 자극과 변혁을 촉진한다. 그것은 대면하는 모든 존재 간의 협상이 이루어지는 외교적 만남의 장소가 되며, 관람자가 현실 세계에서는 실현되기 어려운 미래를 상상하여 시각화하고 각 변화 사이의 연관성을 통해 입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하는 다양성의 판이 될 것이다.

3. <Fortune Telling Center> : 새로운 지구로의 안전한 착륙을 위해

프레임이 사라진 오프라인 전시는 가상세계에서 경험하는 모바일 전시와도 호환된다. 6개의 상담소 작가들의 작품 내용을 모티프로 한 게임형 모바일 전시 <Fortune Telling Center>에서 관객은 1인칭 플레이어의 시점으로 실제 미술관과 가상공간 어딘가를 탐색하며 자신의 운명을 점치는 여정을 떠나게 된다. <Fortune Telling Center>는 플레이어가 자신의 고민을 입력하고 가상 전시 관람을 마치게 되면, 운명의 관점에서 제공되는 주역체계를 받아볼 수 있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이다. 게임형 가상의 전시 공간에도 총 6개의 서로 다른 공간들이 각기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 플레이어는 6개의 방과 6개의 문을 지나며 다양한 사물들을 마주치게 되고, 어떤 방식으로 환경에 접근하는지에 따라 다른 점괘를 얻게 된다. 오프라인 전시를 모델로 한 게임형 가상 전시 환경에서 플레이어는 자신의 의지와 선택에 따라 어떠한 방향 또는 관점으로든 접근할 수 있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탐험을 시작할 수 있다. 프레임이 없는 오프라인 전시 <상담소>의 작동방식은 모바일에서 게임으로 경험하는 가상 전시의 메카닉과 호환되어 미술관 공간이 현실 세계의 시뮬레이션이라는 사실을 좀 더 직관적으로 인지하게 만든다.

『게임인류』의 저자 김상균 교수는 인류의 역사에서 ‘탐험’의 경험이 기술의 발전에 따라 간접 경험으로 대체되었으나, 최근에 와서 상호작용성이 적용된 ‘게임’ 매체를 통해 비로소 개인이 주도적으로 상황을 바꿔나가는 직접 경험으로 다시 전환되었음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아주 오랜 옛날 탐험은 직접 경험이었다. 사냥을 하고 물고기를 잡으면서 위험에 노출됐고, 사망하는 경우도 많았다. 인류는 본능적으로 안전한 매체를 찾았고, 구전되는 이야기와 그림, 소설을 통해 간접 경험을 늘려갔다. 19세기 말, 마침내 영화가 등장했다.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영화적인 기법을 활용한 것은 뜻밖에도 종교였다. 설교로 들려주거나 글로 읽으며 상상했던 것과 달리 지옥을 형상화한 영상은 공포 그 자체였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간접 경험으로 할 수 있는 모험의 범위는 넓어지고 더불어 상상력도 좋아졌지만, 직접 경험처럼 강렬한 기억을 몸에 남기지는 못했다. 완성된 이야기인 책과 영화에는 내가 개입해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상 매체에 상호작용성이 적용된 것이 게임이다. 정해진 세계관과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주도적으로 상황을 바꿀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예술의 역할과 잠재성은 우리가 속한 사회의 현실이나 가능성을 시뮬레이션하고 허구적 상상의 장을 마련하여 새로운 기준이 된 사회적 관계들 속에 개개인이 자신의 선택의지로 삶의 방향성을 재정립할 수 있는 신호를 보내는 행위에 있지 않을까. 미술이론가 수잔 레이시는 개인의 상호작용성이 매체가 된 예술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이렇게 강조했다. “각 개인에게 목소리를 주는 것은 공동체를 만들고 사회적으로 응답하는 미술을 만드는 것이다. 상호작용은 표현의 매체가 된다. 즉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공감각적으로 보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 또한, “우리의 가장 심각한 몇 가지 사회문제들에 시급한 치유방법이 없을 때, 우리[예술가]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주변에 발생하는 생생한 사실들을 증언하고 느끼는 것”이라고 말하며, “이러한 느낌을 가지는 것이 예술가가 세계에 제공할 수 있는 봉사”라고 주장한 바 있다.

궁극적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예술은 현재 우리 사회에 내재한 문제들에 대한 느낌을 증언하고 드러내고 그것을 시뮬레이션할 때, 이전의 지구에서 길을 잃고 방향과 목적성을 상실한 인류가 새로운 지구로의 안전한 착륙을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이동 수단이 될 것이다. 《Fortune Telling: 운명상담소》는 전시에 참여한 관객이 자신의 소우주 안에서 다종다양한 생명체들이 서로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가는 세계를 몸으로 느끼고 눈앞에 마주한 생경한 마이크로 우주를 광활한 상상력으로 확장해 갈 수 있는 메타버스 정거장이다. “Ready-Set-Go!”


조주현은 일민미술관 학예실장이다. 다학제적 인류세 커리큘럼을 연구하고 탈식민주의 관점의 역사 되쓰기 작업에 관심을 두고 있다. 연극, 퍼포먼스, 포스트드라마, 게임 등 다양한 매체 실험을 통해 관객 참여, 공동체, 아카이브 아트 분야의 새로운 예술 형식을 모색한 전시기획을 해왔다. 「포스트-미디어 시대 참여 예술 담론과 양상 연구」(2016)로 박사 논문을 썼으며, 최근 기획전시로는 <1920 기억극장: 황금광시대>, <새일꾼 1948-2020>, <Dear Amazon: 인류세 2019-2021> 등이 있다.

  • 본 에세이는 2021 제15회 한국박물관국제학술대회 <포스트 코로나시대의 박물관의 미래: 회복과 재구상>(한국국제미술교육학회, 2021년 5월 23일) 발표문을 수정 보완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