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런 박물관인상 수상자 인터뷰 – 중진부문 김종헌 배재학당역사박물관 관장

지난 5월 17일(월) 한국박물관협회가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개최한 <제24회 전국 박물관인대회>에서 박물관인 최대의 영예인 자랑스런 박물관인상 시상식이 열렸다. 이날 수상한 영광의 주인공 중 중진부문 수상자인 김종헌 배재학당역사박물관 관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자랑스런 박물관인상 중진 부문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수상 소감 부탁드립니다.

제 인생의 획을 긋는다면 처음에는 건축으로 두 번째는 박물관인 것 같습니다. 영광스럽게도 자랑스런 박물관인 상을 받게 되어 저 역시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앞으로는 제대로 하라는 격려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 관장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Q. 배재학당역사박물관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2008년에 개관한 이래 배재학당이 우리나라 근대사에 남긴 의미를 추적해 나가고 있습니다. 배재학당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교육기관으로 알려져 있는 데, 이는 단순히 서양식 교육을 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한국의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서양의 문화를 접목하려 했던 것입니다. 당시 서양식 교육은 이전 유교를 기반으로 한 교육과는 달리 생물학, 화학, 물리학, 전문학, 음악, 미술, 체육 등 삶과 실질적으로 연결된 교육을 시작한 곳입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지요. 당시 배재학당에는 전 세계로부터 온 많은 지식인들이 모여들어 새로운 지적 담론들이 만들어졌던 곳입니다. 이에 따라 배재학당 주변의 정동에는 그들이 품어낸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던 곳입니다. 이들의 생각, 삶, 에너지는 오늘날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오늘날과 연결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 전경

Q.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은 한국 근대 역사 관련 다양한 연구와 전시 활동을 통해 우리 근대 역사를 알리는데 앞서고 있습니다. 관장님께서는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알리고자 하십니까?

우리의 근대를 너무 지나치게 일본과의 관계 즉 식민지사나 독립운동사로 규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전세계의 문화가 뒤섞이면서 용광로처럼 끓어 올랐던 곳이 정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문화를 기반으로 러시아, 일본, 중국, 영국, 프랑스, 미국의 젊은 지식인들이 모여들었던 곳이지요. 그러다가 그런 용광로가 일본에 의해 갑자기 식어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당시 끓어올랐던 근대의 에너지를 찾아내려 합니다.

가령 저는 한글이 근대시기 정동에서 만들어진 가장 위대한 창작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종대왕께서 만든 훈민정음이 영문법 체계의 띄어쓰기와 마침법과 결합하여 한글이 새롭게 만들어졌습니다. 즉 한국의 전통문화와 새로운 서양의 문화가 결합해서 새로운 한글이라는 근대문명이 만들어졌다는 것이지요. 극히 한정된 사람들에게 사용되었던 언문이 한글로 되면서 국어말살정책을 이겨내며 지금까지 우리가 한글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처럼 우리 근대 시기에 우리가 잃어버렸던 잊어버렸던 힘, 에너지를 찾아나가고자 합니다. BTS, 봉준호의 기생충, 윤여정이 아카데미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저는 정동을 중심으로 근대가 지닌 보편성을 이미 몸으로 체득해온 잠재적 에너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Q.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은 자리한 정동과 연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중심으로서 지역 활성화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박물관의 활동을 통해 어떤 성과를 거두셨나요?

서울 정동을 우리나라 근대문화의 1번지로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문화재청, 문화유산국민신탁과 함께 “대한제국으로의 시간여행”이라는 행사와 함께 정동의 여러 문화유적을 하나로 묶어내었습니다. 이 대한제국 시간 여행 프로그램은 고종이 학생들에게 편지를 써서 미션을 주면서 대한제국과 연관된 장소를 스스로 찾아다니게 하여 전체 미션을 수행하면 대한제국의 중요공간을 모두 답사케 하고 마지막에는 오늘날의 학생들에게 주는 고종의 편지를 일게 하면서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인식케 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하는 행사였습니다. 이러한 행사를 기반으로 결국 정동에는 하루에 10만명이 참여하는 “정동야행” 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졌습니다. 이제는 전국적으로 야행이라는 프로그램이 유행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채로운 행사를 통해 한국 근대를 슬픈 근대가 아니라 그 안에 잠자고 있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던 시기로 인식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관장님께서는 근대건축 분야의 전문가로서 주미대한제국공사관박물관을 성공적으로 복원하여 개관하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복원의 첫 작업이 두텁게 칠해진 페인트를 벗겨내는 것이었는데 13켜, 14켜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모두 벗겨냈을 때 원래의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덧칠해진 우리의 역사의 켜를 벗겨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또한 보수 중 벽난로 속에서 당시 공사관에서 사용했던 일영사전, 엽서, 결혼식 피로연 초대장, 각종 편지 등 일상의 흔적들이 발견되었을 때는 당시의 삶이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하인들이 다녔던 계단의 흔적들을 발견했을 때 당시의 삶을 보다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공사 거의 막바지에 바닥을 샌딩 처리를 하자 그동안 숨어있던 바닥 패턴들이 드러나면서 감춰졌던 역사적 사실들이 드러나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이 개관되면서 앞으로 당시 한미관계의 새로운 사실들이 더욱 더 생생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전세계로부터 온 인부들에 의해 미국에서 한국의 근대사가 복원된다느 점에서 매우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Q. (박물관과 관장님께서)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시다면?

한국 근대의 다채로운 모습들을 찾고 싶습니다. 제가 미국 MIT 대학에 연구년을 갔을 때 실패한 과학을 연구하는 동아리를 보고 깜짝 놀랐었습니다. 근대시기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우리 것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일본이나 강대국에 의해서 꽃피우지 못했다 하더라도 오늘날 우리의 관점과 시각을 적용하면 우리의 근대 안에서 얼마든지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적으로 저는 근대기에 만들어진 벽돌조 한옥을 활성화 시키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박물관계 선·후배, 동료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큐레이터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합니다. 젊고 유능한 큐레이터들이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젊었을 때의 소중한 꿈이 현실적인 이유로 좌절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유능한 사람들이 박물관에 많이 들어와야 우리나라 박물관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