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박물관] 모래섬, 비행장, 빌딩숲 여의도

서울역사박물관(관장 배현숙)은 조선시대 목양장에서부터 비행장, 정치, 금융의 중심지에 이르기까지 시민과 함께해 온 여의도의 변천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서울반세기종합전 <모래섬, 비행장, 빌딩숲 여의도>展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18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여의도 관련 자료를 통해 조선시대 여의도의 모습, 일제강점기 항공교통의 중심지였던 비행장, 해방 이후 1960년대 윤중제 축조를 시작으로 빌딩숲에 이르기까지 변천과정을 새롭게 조명한다.

1부 조선시대의 여의도

1부에서는 조선시대 여의도에 대한 모습을 기록한 자료를 통해 당시 여의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조선시대 여의도는 ‘잉화도仍火島’ 또는 ‘나의주羅衣洲’라고 불렸으며 인접한 율도栗島(현 밤섬)과 크게 구분 짓지 않았다.『세종실록』등에서는 여의도를 가축을 기르는 섬이다. 현재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었던 것으로 잘 알려진 ‘압구정狎鷗亭’은 처음에는 여의도에 있었다. 조선전기 문신 김수온(金守溫, 1410~1481)의「압구정기狎鷗亭記」과 서거정(徐居正, 1420~1488)「압구정부狎鷗亭賦」에서는 당시 여의도에 있던 압구정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또한 강희맹(姜希孟, 1424~1483)『사숙재집私淑齋集』, 정약용(丁若鏞, 1762~1836)『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등에서 여의도의 모습을 시로 남기기도 했다.

보스턴 미술관 홈페이지에는 “한강을 건널 수 있는 주요 선착장: 제물포에서 서울로 가는 길에 있다, 3월에 얼음이 깨지고 있다.(Main ferry across the River Han: On the Road from Chemulpo to Seoul, ice just breaking in March)” 설명으로 표기된 사진이 게재되어 있다. 그러나 정영진에 의하면 이 사진은 이 사진은 마포구 마포동 벽산빌라(지하철 5호선 마포역 부근) 자리에 있던 담담정淡淡亭(조선 초 안평대군이 지은 정자)에서 여의도를 바라보고 촬영한 것이라고 하였다. 사진 가운데 보이는 산은 양말산羊馬山으로 현재 국회의사당 자리이다. 1884년 여의도를 촬영한 사진은 현재까지 여의도를 촬영한 가장 오래된 사진으로 볼 수 있다.

2부 비행장이 된 여의도

2부에서는 여의도에 비행장이 만들어지게 된 과정, 여의도 비행장의 항공노선, 안창남과 손기정 이야기, 해방 이후의 이범석과 여의도 비행장 그리고 여의도 국제공항에 관한 내용이다. 1916년 일제는 여의도를 군용지로 매수하여 연병장으로 사용하였다. 그 중 일부를 활주로와 격납고를 세워 간이비행장으로 만들었는데 이후 1929년에 경성비행장이 되고 군용과 민간이 함께 사용하는 시설이 되었다.

여의도 비행장은 만주와 일본 가운데 위치하여 항공교통의 요지였다. 처음에는 우편비행으로 시작했다가 이후 여객항공으로 발전하였다. 1930년대에는 도쿄-경성-다렌을 잇는 항공노선이 개설되기도 했다. 이러한 항공노선발전은 일제의 만주침략, 만주국 운영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여의도 비행장에는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여의도 비행장을 무대로 1922년 고국방문비행을 한 안창남(安昌男 1900~1930),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孫基禎 1912~2002) 은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조선 사람들의 자랑이었다. 광복 직후 1945년 8월 18일 한국광복군 이범석과 장준하, 노능서, 김준엽은 여의도 비행장에 도착한 이야기 등 여의도 비행장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여의도 공원 내에 위치한 C-47수송기와 연계전시를 추진할 예정이다. C-47수송기는 한국광복군 이범석李範奭, 장준하張俊河, 노능서魯能瑞, 김준엽金俊燁의 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물로 광복군의 발자취를 살펴보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현재의 C-47수송기는 1945년 이범석 등이 탄 C-47수송기과 같은 모델이다.

1955년까지 여의도에 미 공군이 주둔해있었다. 미 공군병사 잭 윌리엄스Jack William, 앤드류Andrew, 존 애비넷John Avnet 등 3인은 1955년 여의도 미 공군기지에서 근무하는 동안 여의도 주변풍경과 항공사진, 미 공군기지의 모습을 촬영하였다. 여의도의 모습이 생생히 담겨있을 뿐만 아니라 여의도를 연구하는데 있어 역사적 가치도 높다고 할 수 있다.

3부 여의도 개발시대

3부에서는 1968년 여의도의 윤중제 공사에서부터 택지가 조성되어 각종 시설이 입주하여 빌딩숲을 이루고 한강재정비에 이르기까지 여의도의 현대화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1960년대 서울은 인구과밀화, 주택, 급수난 등으로 도심부를 확장해야 했다. 한강 홍수로 인한 침수피해를 계기로 여의도 개발이 중점과제로 떠올랐다. 서울시장 김현옥(재임 1966.3~1970.4)은 여의도에 제방을 쌓고 택지를 개발하면 이러한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윤중제를 공사하였다.

여의도 도시계획에 대한 초안은 건축가 김수근이 계획하였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이 광장 조성을 지시하여 당초 계획에서 변화가 생겼다. 이와 더불어 와우아파트 붕괴 사건(1970년 4월 8일)으로 김현옥 시장이 사임하고 양택식 시장이 부임하였다. 그는 여의도에 대규모 광장을 조성하고 택지 개발을 시작했다. 드넓은 여의도에는 공공기관 및 기업들이 입주하기 시작했고 여의도는 빌딩숲이 되었다.

서울시는 1981년 제24회 올림픽을 유치가 확정되면서 한강의 수질오염과 치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강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하였다. 여의도를 중심으로 하수 처리장, 저수로 정비사업 등이 시행되었고 둔치가 조성되었으며 한강공원이 개장되었다. 또한 2008년에는 여의도를 특화 사업지구로 지정하여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을 조성했다.

4부 여의도의 건물들

여의도는 정치, 금융, 방송의 중심지라는 이미지가 있다. 여의도가 이러한 수식어가 생기게 된 데에는 여의도에 대표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4부에서는 국회의사당, 한국거래소, KBS, MBC, SBS, 63빌딩의 건립과정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지어진지 50년이 지난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여의도의 역사와 함께하였다. 1971년에 완공된 시범아파트는 국내 최초로 중앙공급식 난방이었고, 도시가스, 엘리베이터라는 최신식 시설을 갖추었다. 처음에는 접근성이 좋지 못하고 상가도 없어 인기가 없었으나 초·중·고등학교 설립으로 특수학군이 설정되자 엄청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후 민간업자들이 적극 참여하여 삼익, 은하, 한양아파트 등이 들어섰다.

5부 시민의 광장으로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은 5.16 광장을 만들 것을 지시하고 1971년 제23회 국군의 날 행사 개최되었다. 이후 반공행사, 교련대회, 국풍81 등 관제행사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1973년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1983년 KBS 이산가족찾기 방송, 1984년 교황 바오로 2세의 방한 등의 행사로 점점 시민들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6월 민주항쟁 이후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 유세, 각종 시민대회 개최 등을 통해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는 광장으로 바뀌어 갔다. 여의도 광장은 1997년에 조순 시장의 공원 추진화를 통해 1999년 여의도 공원으로 바뀌었고 시민들을 위한 휴식공간이 되었다.

배현숙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서울역사박물관이 2019년에 발간한 여의도 조사보고서를 토대로 그 동안 유물과 자료들을 수집했다. 이를 통해 약 100년간의 여의도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깊은 의의가 있으며, 이번 전시회를 찾는 관람객들이 여의도에 대해 이해와 공감을 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오는 5월 21일부터 9월 26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되며, 시민 누구나 무료로 관람 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운영 방침에 따라 별도 공지 시까지 사전예약관람제 및 현장접수제로 운영한다. (문의 02-724-0274)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3회(10-12시/ 13-15시/ 16-18시)이며, 회당 예약은 100명, 현장 접수 50명 이내로 관람 가능하다. 공휴일을 제외한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관람 예약은 서울특별시 공공서비스예약(yeyak.seoul.go.kr)에서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