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엄에서의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 ①

오정근_하우코칭 파트너 코치, 국민대학교 교수


세한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다중지능이론으로 유명한 하버드대학 교육심리학자인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는 대단한 인물들에 대하여 연구를 많이 한 후 <통찰과 포용>이란 책에서 “리더십의 크기는 스토리의 크기와 비례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실감할 수 있는 그런 장면을 최근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된 <세한도 특별전>에서 였습니다.

<세한도>라는 작품을 통해 추사 김정희가 어떤 인물인지 이야기를 풀어 볼까 합니다. 리더십 관점에서 그의 이야기가 풍성할뿐더러 감동적이기 때문입니다.

추사는 <논어>의 ‘세한연후 지송백후조(歲寒然後 知松栢後彫)’라는 말에 영감을 얻어 그림을 그렸을 겁니다. 이 말은 ‘날이 추워지고 나서 비로소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권세도 부귀도 모두 사라진 채 제주섬 오두막에서 귀양살이하면서 처량하게 지내는 자신에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귀한 책자를 전달해주는 제자 이상적에게 고마움의 증표로 작품을 그리면서, “너야말로 송백과 같이 귀한 인물이구나!” 하는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나 봅니다.

누군가 “구성원에게 어떤 리더로 인식되면 좋을까요?” 혹은 ”조직을 떠나고 난 후 어떤 리더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하고 질문을 받는다면 무어라 답을 하시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추사는 <세한도>라는 작품을 통해 오래도록 기억되는 스토리를 지닌 리더임이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역관이었던 이상적은 이듬해 중국(청)으로 가서 당시 교류하던 걸출한 16명의 문인들을 찾아 추사의 <세한도>를 보여주면서 그들에게 감상문을 받아냅니다. 이상적은 <세한도> 그림과 중국 문인들의 감상문을 모두 하나로 이어 약 15미터에 달하는 <세한도>를 보물로 거듭나게 만듭니다. 이 스토리는 이상적의 인물됨과 추사의 인물됨이 어떠한지 보여주는 듯합니다. 추사가 조선에서 이미 끈 떨어진 인물임에도 시간과 공간을 불문하고 추사에 대한 한결같은 존경의 마음을 글로 담아내었기 때문입니다.

리더가 부재 시 어떤 오해가 생겼을 때 구성원 중 리더를 옹호하고 변호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어떨까요? 추사는 그런 면에서 자신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사람 덕분에 외롭지 않았을 겁니다. <세한도>는 우여곡절 끝에 일본인 후지쓰카 지카시(藤塚隣)에 의해 일본으로 넘어갔다가 손재형선생 덕에 다시 한국품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손세기님을 거쳐 자제인 손창근선생이 2020년 드디어 국가(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을 합니다. 유물이나 작품이 후손에게 지속가능하게 이어지도록 한 일들은 그런 사명감이 투철한 몇몇 분들의 정신이 살아있었던 덕분입니다. 뮤지엄의 강점은 바로 지속가능입니다. 사람들은 뮤지엄이야말로 지속가능에 관한 한 최고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뮤지엄이 지속가능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지속가능한 조직이 되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하드웨어(유물, 작품이나 건물)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유지하는 사람)도 중요합니다. 경영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피터 드러커는 모든 조직의 궁극적 목적은 단 하나, 즉 고객창출임을 강조합니다. 그것을 위해 안으로는 혁신을 해야 하고 밖으로는 마케팅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뮤지엄의 핵심강점은 바로 혁신지향적인 기획력을 통해 끊임없이 관객을 유치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방향성을 조율하고 리딩하는 역할이 리더십입니다.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우선, 줄이는 것부터 생각해보겠습니다. 바로 갭(Gap)을 줄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리더십의 갭은 인식의 갭입니다. 리더십이 작동이 안 되는 원인은 인식의 갭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리더의 의도가 전달되지 않았거나, 구성원의 의도가 전달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스트레스 상황이 아니면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가 맡은 일을 잘하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은 선한 의도를 지니고 있다는 전제에서 소통을 하게 되면 갭을 크게 줄어듭니다.

맹자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자가 맹자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학식도 풍부하시면서 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직접 가르치지 않나요?” 맹자가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답을 합니다. 하나는 자식이 가르치는 대로 하지 않아 부모입장에서 노여움이 따른다는 겁니다. 또 자식입장에서는 아버지가 자신을 바르게 하라고 가르치지만 아버지 역시 바르게 하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옛날 사람들은 자식을 서로 바꿔 가르쳤다(역자교지 易子敎之)”고 맹자는 말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실감나는 이야기입니다.

맹자의 그 다음 말이 중요합니다. “부자지간에는 선을 책망하지 않는 법(부자지간 불책선 父子之間 不責善)이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선을 책망하면 사이가 멀어지기 마련이라는 것이지요(책선즉리 責善則離). 여기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불선이니까 책망할 텐데 왜 맹자는 선을 책망한다고 했을까요? 저는 이 대목에서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의 관점을 발견했습니다. 부모가 볼 때는 불선이지만 자식입장에서는 선(善, 잘하고 싶다)입니다. 반대로 아버지의 훈육이 선함이지만 자식입장에서는 불선(간섭)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부자지간에 입장에 따라 인식의 갭이 생기듯 조직에서도 늘 인식의 갭이 생기고, 이것이 리더십의 갭을 일으킵니다. 따라서 우리는 상호 선함(잘하고자 함)을 먼저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통을 할 때 갭을 어떻게 줄여야 하는지 그림으로 설명하겠습니다.


의도와 표현의 갭

대부분 사람들은 말을 할 때 자신이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살피기보다는 자신의 의도를 생각하며 전합니다(1). 하지만 자기가 상대의 말을 들을 때에는 상대의 선한 의도를 들으려 하기보다는 표현(겉말)에 신경을 쓰고 말꼬리를 잡거나 말을 가로막거나 그러합니다(4).

예컨대 “내가 너 잘되라고 조언을 해주는데 표정도 안 좋고 말투도 퉁명스럽고 왜 그 모양이야?” 이런 상황이 생기는 이유는 말하는 사람은 선한 의도를 염두에 두고 말했겠지만, 그 말을 듣는 상대방은 상대의 선한 의도는 알아차리지 못한 채 상대 표현이 간섭이나 잔소리처럼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즉 인식의 갭이 소통의 갭으로 발전합니다. 따라서 이제부터 소통을 할 때는 반대로 하면 좋습니다. 특히 조언이나 피드백을 할 때는 “나는 네가 더 잘 되면 좋겠거든 그래서 말하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괜찮을까?” 하는 식으로 본인의 선한 의도를 말하면서 시작하면 비록 표현이 서툴러도 오해가 줄어들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지금 누군가와 혹은 어떤 장면에서 특히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기존에 해오던 방식과 반대로 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록 표현이 거칠더라도 상대가 ‘나의 성장을 위해 피드백을 해주는구나!’하고 선한 의도를 읽어준다면 소통은 원만해지고 고맙다는 표현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내가 말할 때는 나의 표현을 살피고, 들을 때는 상대방의 선한 의도를 읽는 것이 소통이 순탄하게 작동하는 원리입니다.

이렇게 소통하는 사람을 대인(大人) 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맹자에게 제자가 묻습니다. “어떤 사람은 대인처럼 말하고 왜 어떤 사람은 소인처럼 말하나요?” 맹자는 “큰몸을 사용하면 대인이다”고 답합니다. 소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은 몸 즉 몸에 달린 눈이나 귀만 사용하면 소인처럼 굴 수 있다고 합니다. 대인(리더)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말하지 않는 것을 들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대인은 기획서가 늦는 것을 일이 굼뜨다고 보기보다 완결성을 높이려고 그러는구나, 하고 일단 상대를 선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수용합니다. 만일 구성원이 “관장님, 이런 것까지 우리가 해야 하나요?” 하고 말한다면 소극적이고 저항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겠으나 큰몸을 사용하여 크게 생각합니다. “성과에 집중해야 하니 우선순위를 가리면서 하자는 것 아닌가?” 하며 상대가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좋은 이유(선함)를 찾아보는 것입니다.

코칭 중에 신임팀장이 “구성원이 회의 중에 자꾸 대들어서 힘들어요” 하고 불편한 상황을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만일 그 직원이 의도적으로 대든다면 어떤 좋은 이유가 있어서 그럴까요?” 하고 물었더니 금방 좋은 답을 찾아냅니다. “생각해보니 그 친구는 리스크 점검을 철저하게 하고 싶었나 봅니다”하는 겁니다. 그래서 “만일 회의 중에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고맙다고 해야겠어요. 좋은 이유를 찾아보니 좋게 생각할 수 있고, 그것이 제게도 좋은 거네요” 합니다.

다른 조직도 비슷하지만 갈수록 세대 차이가 벌어집니다.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신세대의 특성이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예컨대 MZ세대가 자라나온 문화적 특성에 따라 사고방식이나 행동방식, 언어표현방식이 다릅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축약형 언어(예: 드립력=애드립을 잘하는 능력)가 생소하여 무슨 말인지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축약형 언어가 신세대의 욕구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굳이 그런 것까지 알 필요가 있어?’ 하는 생각도 들겠지만, 축약에는 그들의 욕구가 깊숙이 내재 된 것이라는 관점에서 살피면 사람이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신세대의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들의 축약형 언어가 그러하듯이 신세대의 첫 번째 욕구는 “번거로움”을 싫어한다는 점입니다. 대체로 간결하기 바라는 것입니다. 리더가 말을 길게 하면 싫어합니다. 예를 들어 업무를 지시할 때 What – Why 방식으로 업무를 간결하게 지시하면 좋습니다. “지금 OO 일을 했으면 좋겠네. 왜냐하면 OOOOO 상황이거든” 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Why를 말할 때 일의 배경이나 관점과 더불어 그 일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말해주면 더욱 바람직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성장에 대해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번 일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 같아?”하고 물어봐도 좋습니다. 의미를 잘 찾게 되면 그 일에 몰입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의미 있는 일 자체가 동기를 일으키는 요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욕구는 “재미”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남들이 볼 때 아무리 좋은 직장도 일에 재미가 없으면 떠난다고 합니다. 따라서 재미라는 아이디어를 일에 접목하도록 기회를 열어 주면 더 좋겠습니다. 젊은 관객들이 늘어나기 위해서는 젊은 감각이 더 필요합니다. <세한도 특별전>과 연계한 <평안도>를 보면 두 전시 모두 디지털화하여 볼거리를 풍부하게 한 점이 제게는 독특했습니다. <세한>의 영상은 상징성이 대단했습니다. 젊은 세대들은 영상세대이기에 영상에 친숙할뿐더러 직접 사진을 담아 세상 밖으로 확산하기를 좋아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감각을 배우기 가장 좋은 곳이 뮤지엄이라고 인식되면 좋겠습니다. 작품을 보여주는 멋스러운 디스플레이 방식이 젊은 마케팅적 감각을 드러내고 있어서 앞으로 또 어떤 것이 새롭게 등장할지 기대가 됩니다.

세 번째 욕구는 “신뢰”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믿고 따를만한가 하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피드백”을 받아보면 어떨까 합니다. 신세대들은 자기표현에 능하다고 합니다. 불공정을 참지 못한다고도 합니다. “우리 조직이 OO 방향으로 잘 나가면 좋겠는데, 잘 운영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거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하는 식으로 우회적 질문을 통해 솔직담백한 피드백을 받는 것은 소중한 자산이 됩니다. 아니면 제3자를 통해 구성원의 속마음이 어떤지 들어 보면 조직관리에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미국에서 조사된 바에 따르면 우수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리더일수록 구성원에게 피드백을 자주 받고 잘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다음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