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대, 전시 감상과 해석의 새로운 모멘텀

한주연_삼성문화재단 미래혁신팀장


벤자민 입스 길먼의 <박물관 피로> 연구

레이블을 통한 해석의 필요성

박물관에서 도슨트(Docent)나 해설사는 꽤 익숙한 말이 되어 관람객들은 일부러 정해진 설명 시간에 맞추어 전시장을 찾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작년부터 코로나 19로 인하여 많은 박물관은 한동안 문을 열 수도 없었고 관람객과 만나는 소통방식의 변화를 경험했다. 당연히 도슨트의 활동 대신에 앱 애플리케이션이나 오디오 클립 등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주목해서 볼 전시 해석의 도구는 바로 작품 옆에 붙여지는 명제표, 즉 레이블(Label)이다.

역사를 돌아본다면 1920년대 보스턴미술관의 벤자민 입스 길먼(Benjamin Yves Gilman)은‘박물관 피로(Museum Fatigue)’연구로 관람객의 동선과 부적절한 레이블 위치를 지적하여 오늘날 관람객 연구의 시작을 열었다. 하지만 아직도 레이블은 관람객에게 친절하지 않다. 미술품의 경우에는 레이블을 최소화하여 작품 자체의 감상에 몰입하도록 연출하기도 하고, 너무 긴 설명과 어려운 텍스트로 관람객이 읽지 않고 지나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전시와 감상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병행하며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과 같은 팬데믹 시대에서는 전시 관람에서 질적 경험이 중요하게 되었다. 관람객의 이해도에 맞는 적절한 설명이 담긴 레이블이 제공되어야 하면서 디자인 못지않게 그 내용을 구성하는 전략이 필요해졌다.


디트로이트미술관(2017), 피바디에섹스박물관(2018)

미국박물관협회(AAM)의 우수 레이블 경연대회

해외에서는 이미 박물관 내 해석부서나 해석 정책(Policy of Interpretation)과 실행에 관한 위원회를 두는 경우가 많기에 레이블에 관한 관심이 우리보다 앞서 있다. 미국박물관협회(American Alliance of Museums, AAM)에서는 2009년부터 매년 우수 전시 레이블(the Excellence in Exhibition Label Writing Competition)을 선정하고 그 결과를 공유한다. 이 대회는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레이블은 관람객과 소통하는 주요한 도구라고 판단하여 어떤 레이블이 잘 쓰인 것인지를 평가하여 수상자를 결정한다. 지난 2020년에는 201개의 레이블 가운데 우수 레이블로 총 16개를 선정하였다. 참여 박물관들은 과학관, 역사관, 어린이박물관과 미술관 등 그 종류가 다양하며 특히 과학이나 어린이박물관의 레이블은 교육적 이해와 어린이를 위한 디자인을 고려하여 더욱 독특한 디자인과 내용이 많다.

심사단은 주로 박물관장과 출판편집인(에디터) 등으로 구성되었고 여기에 참여하는 대표적인 전문가로는 이 대회의 창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 스와루파 아닐라(Swarupa Anila)가 있다. 아닐라는 거의 20년 가까이 디트로이트미술관의 해석부장으로 재직하다가 관객 개발의 성과가 인정되어 최근 온타리오미술관 부사장이 되었고, 현재 미술관해석협회(the Association of Art Museum Interpretation)의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디지털 해석과 전시 영역에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녀는 우수 레이블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며 다음과 같이 소감을 전했다.

“좋은 레이블은 작성자가 글을 얼마나 잘 쓰는가의 문제 못지않게 관람객의 배움과 경험을 연결하려는 작성자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좋은 레이블은 관람객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으며, 더 좋은 레이블은 새로운 생각과 궁금증을 유발하죠. 그리고 그보다 더 훌륭한 레이블은 관람객의 신체적인 경험과 이어져 눈을 더 크게 뜨고 작품을 보거나 숨을 멈추게 하며 피부에 전율을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심장이 빨라지며 이전에는 몰랐던 세상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비버리 세렐의 <전시와 레이블> 2015

해석을 위한 관람객 연구

전시 해석의 매체는 전시장 패널, 동선 안내 지도, 타임라인, 다이어그램, 인터랙티브 영상, 도슨트 등 다양하다. 박물관 해석 정책에서 중요한 요소는 다양한 관람객에 관한 배려, 문화비교주의, 열린 해석과 접근성을 꼽는다. 이러한 매체 중에서 레이블을 제대로 작성하기 위해서 박물관 학예사가 고려해야 하는 것은 결국 관람객에 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가령 텍스트의 양은 어느 정도가 적절한가, 어떤 관람객(연령대, 학습수준, 배경 등)을 기준으로 두고 설명해야 하는가, 어떠한 톤&매너를 갖추어야 하는가, 어떤 방법으로 레이블을 디자인하고 배치하는 것이 적절한가 등을 다각도에서 고려해야 좋은 레이블을 작성할 수 있다.

<전시와 레이블 Exhibit Labels: An Interpretive Approach>이란 저서로 널리 알려진 비버리 세렐(Beverly Serrell)은 1996년에 출판했던 이 책을 보완하여 2015년에 개정판을 내었다. 그녀는 디지털 시대에 레이블은 더욱 중요하며 관람객은 상호적이고 참여적인 전시를 더 선호하기 때문에 보다 해석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녀는 존 포크(John Folk)가 구분한 탐험가, 매개자, 경험추구자, 전문/애호가, 여가충전자의 5가지 관람객 구분처럼 박물관마다 각자 기관의 특성에 따라 구분한 관람객 분석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관람객 연구와 분석 없이 관람객과의 소통을 이야기하는 것은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막연한 편지를 쓰는 일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뮤지엄의 관람객 구분, 비버리 세렐(2015) <전시와 레이블>에서 인용, 70-74

국내 박물관의 사례와 해석 정책

국내에서도 민속박물관과 어린이박물관 등 관람객에 관한 해석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전시레이블을 고민해 온 박물관들이 많다. 특히 작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새 보물 납시었네> 전시에서 전시레이블에 관한 연구와 노력이 매우 돋보였다. 이 전시는 – 평소 전시장에서 활약하던 해설사는 없었지만 – 작품에 관한 해설뿐 아니라 개별적이고 전체적인 콘셉트와 공간별로 필요한 정보들을 관객이 읽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각적으로 구현하였다. 결국, 레이블의 종류와 제공되는 내용이 얼마나 관람객에게 잘 전달되느냐의 성공 여부는 학예사들의 작품과 관람객에 관한 연구와 해석의 노력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국립중앙박물관 <새보물 납시었네> 전시장면

이 외에도 미술관에서는 작가가 전시 작품과 QR코드(Quick Response Code)로 연결된 영상이 하나의 세트가 되도록 제작하여 관람객의 경험을 확장하는 실험적인 방법도 시도되고 있다. 디지털 디바이스의 활용은 더욱 적극적으로 적용되면서 다양한 디바이스도 개발되고 있다. 그것이 관람객 개인과 연결되는 요즘에는 아주 차별화된 콘텐츠가 아니라면 관객 분석을 통한 지속가능한 해석과 발전이 필요하다. 즉 레이블의 문제는 스마트폰, 유튜브, 앱 애플리케이션, 나아가 도슨트의 활동까지도 모두 연결된다. 결국, 오디오가이드 원고나 도슨트의 시나리오, 레이블의 텍스트 모두 같은 해석상의 맥락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과 같은 팬데믹 시대에 박물관과 미술관은 관람객에게 그동안 제공하던 정보의 해석 방식을 돌아보아야 한다. 또한, 더욱 적절한 정보의 제공 방법에 관한 해석 정책과 전략을 만들어야만 관람객의 감상과 경험을 변화시킬 수 있다.


최근 활용되고 있는 디지털 레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