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시를 열면서

김인혜_국립현대미술관 근대미술팀장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시가 5월 30일(일)까지 한창이다. 코로나 19로 지친 일상의 위안을 찾으려는 관람객으로 연일 가득 찬다. 시간당 70명은 인터넷 사전예약을 통해, 30명은 현장에 오신 분들을 위해 자리를 마련해 두고 있는데, 매시간 예약은 꽉 차고, 현장 접수를 기대하고 온 사람들도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는 형국이다. 미술관 바깥은 대기자들로 붐비는 데 반해, 미술관 내부에는 적정한 인원이 항상 유지되기 때문에, 관람 환경은 최상이다.

솔직히 전시를 준비할 때만 해도, 이 정도로 대중적 관심을 받게 될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전시 내용이 절대 쉽지 않고, 등장인물도 매우 많아 관람객들이 어려움을 토로하면 어쩌나 계속 걱정했던 것이 사실이다. 막상 전시를 열고 나니 사람들이 모르는 내용도 재미있으면 본인의 방식대로 ‘즐긴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전시를 열고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두 가지이다. ‘왜’ 이와 같은 주제의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런 전시를 준비할 수 있었는지 이다. 이 전시가 ‘무엇을’ 다루고 있는지는 이미 미술관 홈페이지 전시 소개에서부터 브로슈어나 전시장 텍스트로 충분히 소개되어 있어, 이 글에서는 생략하기로 하고 앞의 두 가지 질문에 관해 집중해서 답해 보고자 한다. (전시의 내용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http://mmca.go.kr 을 참고해 주시기 바란다.)

‘왜?’라는 질문은 늘 중요하다. 미술과 문학의 관계를 왜 조명해야 하는가? 사실 이 주제는 한국 근대미술 연구의 핵심 키워드로, 앞서 많은 연구자가 논문을 내놓았던 분야이다. 미술사가뿐 아니라 문학사가들도 이 주제에 관해 다양한 책과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필자가 기본적으로 이 주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한국 근대미술사 서술의 빈약함’에 관한 반성 때문이다.

우리가 근대미술사를 얘기할 때, 주로 작가 중심으로, 양식 중심으로, 장르 중심으로 작품을 분류하고 해석하다 보면, 의외로 가장 놓치는 질문은 ‘왜’이다.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어떤 ‘사상’이 화가에게 이러한 작품을 그리도록 인도하였는지? 근대의 화가들이 전통 중인계층의 장인들과는 달리, 일정한 규범에 맞춘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자유와 내적 욕구 속에서 작업했다고 한다면, 그들을 충동하게 했던 정신적 원천은 무엇인가? 말하자면, 근대미술 ‘사상사’에 관한 질문이다.

그런데 이 ‘정신’의 탐구는 미술가들과 어울렸던 문학가들의 ‘텍스트’에서 오히려 더욱 극명하고 생생하게, 그리고 실증적으로 서술된 경우가 많다. 일례로, 김용준이 서양화를 그리다가 한국화로 전향하게 된 이유를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소설가 이태준의 텍스트를 읽게 되는 식이다. 이태준과 김용준은 일제강점기 치욕의 시대에 중국도 일본도 아닌, ‘조선’ 고유의 전통이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이를 현대화하려고 시도했다. 이러한 노력이 김용준에게는 그림으로, 이태준에게는 평론과 수필로 증명된 것이다. 우리가 시대의 맥락을 이해하고, 미술과 동행했던 다른 분야를 함께 들여다보고, 당시의 예술가들이 실제로 그랬던 것처럼 분야 간의 상호 ‘교류’와 ‘융합’을 드러내 보일 때, 우리는 한국 근대미술을 훨씬 더 매력적인 것으로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화단은 빈약하고, 미술관도 없고, 미술시장도 거의 전무(全無)한 상황 속에서, 예술가들은 고군분투하며 자신의 역량을 불태웠는데, ‘팬시’한 서양미술사가의 눈으로 본다면 작품들은 형편없고 아류작 같다. 남아 있는 작품도 별로 없고, 그래서 더 할 얘기도 없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런 식의 시각 속에 갇혀 있는 한 한국 근대미술 서술의 지평은 너무나도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양식적으로 덜 세련되고 서툴지라도, 예술가들이 그 격동의 시대를 관통하며, 자신의 사상을 키워나갔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지점이다.

어느 젊은 예술가가 필자와 한국 근대미술에 관한 대화를 나누다가, “우리는 우리의 근대미술에 대해 왜 이렇게 모르는가?”, “우리는 한복을 입다가 왜 갑자기 청바지를 입게 된 것인가?” 하고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설마 한복을 입다가 바로 청바지를 입게 되었을 리가 있겠는가. 우리는 그 어떤 시대보다 ‘격동적’이었던 근대 시기의 문화와 예술을 다채로운 시각에서 재고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우리를 알기 위해서 말이다.

두 번째 질문은 ‘어떻게’ 이런 전시를 준비했는가 하는 것이다. 전시 준비를 얼마나 오래 했는가 하는 질문도 의외로 굉장히 많이 받는다. 사실 미술관의 학예연구직 한 사람이 특정 전시의 내용을 모두 감당하고 파악하고 연구해서 어떤 전시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국립’미술관과 같은 곳에서 하는 전시는 한 ‘개인’의 역량을 보여주는 전시가 아니라 한 ‘국가’의 지적 수준을 집결시킨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서 이 전시는 실로 많은 이들과의 협업을 통해 가능했다. 그 중, 세 분의 역할과 협업 내용에 대해서는 여기에 간단히 기록해 두고 싶다.

근대서지연구소의 오영식 소장은 40년 이상 근대서지를 연구하고 수집한 분이다. 이분이 소장하고 있는, 혹은 이분을 통해 대여한 많은 책과 잡지가 이번 전시에 출품되었다. 이미 오래전, 전시하게 될지 아닐지도 결정되지 않았을 때부터, 미술관의 아카이브 연구센터에서는 오영식 소장 자료를 스캔하고 기술(記述)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 작업 자체도 오영식 소장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는데, 이러한 기초 작업이 있었기 때문에, 전시가 확정되었을 때 후속 작업이 훨씬 더 수월했다. 미술관은 ‘전시’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기관은 결코 아니다. 어떻게 활용될지는 모르더라도 언제나 연구를 위한 기본 데이터를 축적하고 관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야 한다.

광운대학교 조영복 교수는 문학평론가로서, 이번 전시의 문학 부문 기획자이다. 1년 가까이 필자와 조영복 교수는 매달 한 번 만나서 온갖 대화를 나누었다. 이분이 쌓아놓은 ‘화문(畵文)’ 목록은 특히나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근대기에 많은 시, 에세이, 기행 산문 등은 처음 발표된 때 ‘그림’과 함께 실렸다. 그러한 ‘화문’이 언제 어느 잡지나 신문에 실렸는지 일차적인 목록 작업을 모두 해 놓으셨다. 물론, 이 집지들의 원본을 찾아 촬영하고 데이터를 생산하고 보정, 배열하는 고단한 작업은 모두 미술관의 스텝들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말이다. 조영복 교수는 전시의 방향을 결정하고 개념을 구분하고 용어를 정리하는, 이른바 ‘기획’ 작업도 멋지게 수행해 주셨다.

마지막으로 경기대학교 공성수 교수는 이번 전시에서 신문소설 삽화 부분에 대해 탁월하게 기여해주셨다. 현대문학 연구자로서 ‘신문소설 삽화’에 천착해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책도 출간한 분이다. 신문소설은 일제강점기 그 무엇보다 강력했던 매체로, 오늘날 드라마나 웹툰 같은 어떠한 타매체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파워 미디어’였다. 신문소설을 누가 쓰느냐가 신문 부수를 결정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신문소설의 ‘삽화’를 1900년대에 태어난 많은 화가들이 열정적으로 그리고 있었다. 이 세대 화가들에게는 그들의 역량을 몰두할 만한 다른 수단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신문소설 삽화를 그리는 일은 단순히 돈을 버는 일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발산하는 기회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 안석주, 이상범, 노수현, 이승만, 김규택, 정현웅을 비롯해 12명의 화가, 약 400여 컷의 신문삽화가 선별되어 전시되고 있는데, 놀랍게도 이 세션이 대중적으로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수많은 삽화 데이터 중에서 어떤 삽화를 결정할지, 소설별로 배열할지 삽화가별로 배열할지, 텍스트와 삽화의 비율을 어떻게 조정할지…그리고 무엇보다 신문소설 삽화에 대해 전시장에서 얼마만큼의 물리적 공간을 할애할지…등 모든 문제들은 공성수 교수와의 대화를 통해 점점 더 명료해졌다.

이외에도 미술관 밖에서 많은 전문가들이 전시의 조력자가 되어 주었다. 또한 미술관 내부에서, 코디네이터, 아키비스트, 공간디자이너, 그래픽디자이너, 전시장 조성 인력, 에듀케이터, 홍보 전문가 등 수많은 전문 인력들의 협업은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점차 직군별 분화와 전문성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하나의 전시를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매뉴얼이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총괄적으로 파악하고 업무를 추진하고 스케줄을 관리하고…무엇보다 야근을 부르는 이 많은 일들을 공들여할 필요성에 대해 ‘확신’을 심어주는 일은 큐레이터의 몫이다.

그러나 전시의 진정한 완성은 관객이다. 이번 전시에는 놀랍게도 20-30대의 젊은 연령층이 첫날부터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이들은 미술 작품을 그저 ‘보는’ 데에 그치지 않고, 삽화를 넘겨 글을 읽고, 시낭송을 듣고, 워크지에다 실제로 시를 쓰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시를 즐겼다. 이 장면은 인상적일 뿐 아니라, 전시를 준비한 입장에서 볼 때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일제강점기 치욕의 시대, 똑똑한 젊은이들이 일자리도 없이 ‘룸펜’ 생활을 하면서도, 정신적으로는 누구보다 고양된 생활을 누리지 않았던가.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예술가들 말이다. 바로 그들처럼, 이 시대 청년들도 결코 희망에 가득 찬 환경에 놓여 있지는 않다. 이들은 본능적으로 아는 것일까. 이들이 한국 근대기를 살아내었던 우리의 선조들에게서 과연 무엇을 배워야 할지를.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오는 5월 30일까지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