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대의 미술관, 관람객의 재정의가 필요하다

임근혜_아르코미술관 관장

2020년 3월 12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바이러스 19에 대해 세계적 대유행을 의미하는 ‘팬데믹’을 선언 한지 일 년이 지났다. 이미 그 이전인 2월 23일 코로나 위기 경보를 ‘심각’ 단계로 격상함에 따라 국내 공공시설의 운영이 일시 중단된 이후, 국·공립 미술관과 박물관은 이미 계획한 전시 일정의 축소 및 변경은 물론 해를 넘겨 연기된 사업을 위해 예산을 재편성하는 등 전례 없는 비상 상황에 대처하느라 분주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전시 준비를 마치고도 관람을 할 수 없거나 관람객 수를 대폭 줄여 시간대별 예약제로 운영하는 등의 운영 제약에 대한 대안 마련에 전력을 쏟아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외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은 기존의 온라인 플랫폼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대안적 소통 창구로 활용했고, 이를 통해 그간 꾸준히 시도되었던 다양한 형태의 온라인 콘텐츠의 양이 급격히 증가했다.

가장 기본적인 온라인 콘텐츠는 단연 소장품이다. 이미 2009년 서비스가 시작된 박물관 포털사이트인 e뮤지엄을 구축한 국립중앙박물관은 코로나 19로 박물관 관람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우리 문화유산을 찾아보고 직접 온라인에서 전시를 기획하며 즐길 수 있도록 <나도 큐레이터>라는 공모전을 개최한 바 있다. 단순 검색 기능을 넘어 사용자가 스토리텔링의 주체가 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활용 가치를 높인 좋은 사례이다.

해외의 경우, 최근 루브르박물관은 48만여 점의 소장품 전체를 온라인 플랫폼(https://collections.louvre.fr/en/)에 공개한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박물관 소장품이 인터넷 사용이 가능한 전 세계 모든 이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였다는 점뿐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중 나치가 유대인으로부터 약탈한 1만여 점에 달하는 예술작품에 관한 반환 계획과 함께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온라인 공개와 더불어 이 점을 강조한 것은, 미술관의 접근성이 높아지는 만큼 정보의 투명성과 더불어 윤리적 책임이 함께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전시 현장을 담은 동영상과 가상현실을 이용한 온라인 전시 투어 역시 미술관 방문을 대체하는 프로그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아르코미술관의 경우, 지난 한 해 동안 방역 지침에 따른 미술관 휴관이 늘어남에 따라, 관람객 수가 약 70% 감소했지만 유튜브를 비롯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팔로워 수는 80% 증가하는 현상을 통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제한 관람으로 인해 개막식은 물론 작가와의 대화, 퍼포먼스, 강연 등 전시 연계 프로그램 등도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대신 실시간 또는 녹화 편집한 영상을 온라인에 공개하는 등 관련 콘텐츠가 더욱 다양해지면서 소위 ‘랜선 관람객’의 층위도 팬데믹 이전 미술관을 찾았던 관람객보다 폭넓고 다양하리라 예상된다.

이 외에도 미술관은 가정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은 어린이를 위해 스스로 또는 가족과 함께 만들어 볼 수 있는 창작 키트(KIT)를 무료 배포하거나 온라인 포스터 공모 및 SNS 챌린지에 팔로워들의 참여를 유도하였다. 미술관이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배우는 장소일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를 연결하는 공동체 역할 또한 중요함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다양한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 매체의 발전과 더불어 이미 보편화하고 있는 형식이 코로나 19를 계기로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미술관의 온라인 콘텐츠가 강화되는 현상은 팬데믹으로 인해 긴급하게 만들어진 일시적 대안이 아니라, 미술관의 접근성을 높이고 새로운 경험으로 이어져 향후 ‘뉴노멀’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다. 물론, 전시의 물리적, 감각적 경험을 온라인의 디지털화된 정보가 대체할 수 없으므로 미술관은 전시 기획에 있어서 더욱 공간적, 신체적 경험의 질을 높이는 것에 주력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도 강한 공감을 얻고 있다. 이를 종합하자면, 미래의 미술관 관람객은 정보와 지식의 접근성을 높이는 온라인과 일상에서 접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오프라인의 전시 경험을 동시에 필요로 할 것이며, 미술관은 이에 부응하여 콘텐츠 생산과 매개 활동의 스펙트럼을 온/오프라인 모두로 확장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소장품과 아카이브 자료의 디지털화와 온라인 플랫폼 개발 등 기술적 측면은 물론, 온라인 전용 또는 온/오프라인 병행 등에 대한 전략적 기획과 이에 따른 적절한 예산 안배가 필요하다. 이러한 온라인 플랫폼과 콘텐츠의 개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은 바로 이를 사용하는 ‘랜선 관람객’에 대한 이해다. 영국 ‘오디언스 에이전시 그룹(www.theaudienceagency.org)’의 디지털 미술관 관람객 조사에 의하면, 지난해 조사 대상 미술관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처음으로 방문한 사람이 49%이고, 이 중 80%는 실제 미술관을 방문한 적이 없다고 한다. 즉, 팬데믹 시기에 홈페이지 방문자가 2배 증가했고, 이중 상당수가 온라인을 통해 미술관을 처음 접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규 랜선 관람객이 실제 미술관 방문객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미술관의 온라인 플랫폼의 비중이 커진다면 이를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맺기 시작한 디지털 관람객의 영향력 역시 커질 것이다.

최근 국가 간 이동이 제한된 상황에서 온라인 전시를 통해 비대면으로 국제 교류 전시를 진행한 한 국내 사립미술관 큐레이터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국가에서 관람객이 코멘트와 댓글을 올린 것에 놀란 경험담을 나누기도 했다. K-팝이 글로벌 현상으로 급성장한 이면에 유튜브가 있듯이, 정확한 번역만 제공된다면 미술관의 온라인 플랫폼이 해외에서 한국의 미술과 문화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가장 접근 가능한 창구로 기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인다. 이렇게 인터넷을 통해 미술관-창작자-매개자-관람객이 초국가적으로 연결되고 실시간 소통이 이뤄진다면, 단순한 기능적 목적뿐 아니라 더욱 투명하고 민주적이며 윤리적인 미술관 운영에 대한 요구도 커지게 된다. 앞서 예를 들었던 루브르박물관이 나치가 강탈한 예술품을 반환하겠다는 계획뿐 아니라 영국 등 서구 박물관과 미술관도 제국주의 시대 약탈한 문화재의 반환 사례가 최근 보도된 바 있다. 더 나아가 코로나 19를 계기로 이러한 초국가적 연결망을 통해 성과 중심적인 경쟁을 지양하고 인류가 당면한 위기에 대한 공동의 노력을 모색하는 연대와 협업을 중시하는 새로운 문화가 미술계 내에서도 더욱 확산하고 있다.

전환기 시대 미술관의 새로운 비전 수립은 예술 현장의 창작자와 더불어 새로운 관람객에 관한 연구가 함께 수행되어야 하며, 이는 지역, 세대, 젠더, 장애, 디지털 접근성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성에 관한 이해와 성찰이 곧 미술관의 운영 철학과 계획에 반영되고 일상의 다양한 층위에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실천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팬데믹으로 인해 일상이 무너진 지금 이 시기는 과거의 모든 경험과 관계를 재점검하고 새로운 생활 방식과 감각을 익히면서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하는 값진 기회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포스트 팬데믹 시대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폭넓은 관람객과 새로운 예술 생태계를 함께 만들어가는 구성원으로 재정의하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포용적 미술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이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연구해야 한다. 미술관의 미래는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