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평등한 상상계를 향한 투쟁 – BLM 운동과 미국 남부연합 기념물

정웅기_존스홉킨스대학교 정치학과 박사과정

 

유색인종을 위한 별도의 대합실(“COLORED WAITING ROOM”)을 지칭하는 표지 [출처: Library of Congress]
유색인종을 위한 별도의 대합실(“COLORED WAITING ROOM”)을 지칭하는 표지 [출처: Library of Congress]
 

 

미국에는 이른바 ‘딥사우스’(Deep South)라 불리는 지역이 있다. 논자에 따라 범위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이는 대체로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앨라배마, 조지아, 사우스캐롤라이나를 포괄하는 다섯 개 주를 지칭한다. 이 명칭은 통상 ‘남북전쟁’이라 불리는 미국이 겪은 내전(Civil War, 1861-1865)과 깊은 관련이 있다. 여기서는 막대한 규모의 노예 노동력에 의존한 플랜테이션 농업이 이뤄졌으며, 이 주들은 내전 동안 11개 주가 형성한 남부연합(The Confederacy)의 주축이었다. 딥 사우스는 아칸소, 테네시, 노스캐롤라이나주 등을 포함하는 위(upper) 지역보다 남부 중에서도 더 아래(lower) 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 더 짙은 남부 색을 띤다는 의미에서 붙은 명칭이다.

 

내전이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노예제 철폐를 둘러싸고 충돌한 북부와 남부 간의 전쟁이었다는 사실은 대중적인 상식 중 하나다. 20세기에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MLK)으로 상징되는 민권운동이 무르익으면서, 마침내 흑인에게도 완전한 시민의 권리가 부여되었다는 사실 역시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작 그사이에 해당하는- 즉 19세기 후반부터 1960년대에 이르는 – 짧지 않은 역사는 많은 이들에게 그리 익숙하지 않다. 흑인과 백인을 구분한 화장실이나 대중교통 시설물이 찍힌 흑백 사진들이 그 시대의 단면을 우리에게 환기해줄 따름이다.  하지만 역사적 흐름을 곰곰이 따져보면 이런 이미지는 외려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종전 이후 소위 ‘노예 해방’이 이뤄졌다면, 20세기 중반이 지나도록 흑인이 전 방위적인 인종차별을 겪은 현실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 걸까? 그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조지 플로이드 사망 이후 미국 전역에서 발생한 BLM 시위 [출처: Twitter, @Winter_flowerss]
조지 플로이드 사망 이후 미국 전역에서 발생한 BLM 시위 [출처: Twitter, @Winter_flowerss]
 

 

틀림없이 올해는 대다수 미국인에게 역사적인 시기로 남을 것이다. 이러한 집합기억(collective memory)의 한 축은 물론 코로나19로 불리는 새로운 팬데믹이 차지한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다른 축은 Black Lives Matter (이하 BLM) 운동이다. 지난 5월 25일,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인해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하면서 전국적으로- 심지어 전 세계적으로 –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촉발됐다. 물론 그러한 흐름에는 전사(前史)가 존재한다. 2014년에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마찬가지로 경찰에 의해 사망하면서 1차 BLM 운동이 일어난 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운동이 독특한 것은 그 규모와 강도에 있다. 이 흐름은 워싱턴 DC를 비롯해 50개 주 전체에서 발생했을 뿐 아니라, 이전까지 전국적 수준의 시위에 참여한 적이 없었던 소도시와 마을에서도 동참을 끌어냈다.  참가자의 구성에서도, 백인 청년층을 포함해 인종을 아우르는(multi-racial) 폭넓은 지지세력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이전과 차별화된다.

 

그런데 우리의 관점에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대목은 시위대의 주요한 공격대상 중 하나가 공공기념물, 특히 남부연합 기념물(The Confederate Monuments)이었다는 데 있다. 옛 남부연합의 주요 장군과 정치인들의 동상을 주로 지칭하는 이 기념물들은 딥사우스를 중심으로 미 전역에 건립되어 있다. 5월 말 앨라배마주 버밍햄(Birmingham)에서 시위대가 찰스 린(Charles Linn) 동상을 쓰러뜨린 것이 그 시발점이었다. 이 도시를 건설한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한 린은 내전 당시 남부연합 해군 장교로 복무한 인물이다.  이러한 흐름은 곧 전국적으로 확산하여 기념물에 대한 파괴나 낙서, 훼손이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시위대는 인종차별을 상징하는 인물들을 기념하는 행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하며, 해당 기념물들은 철거되거나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BLM 시위대에 의해 끌어내려진 찰스 린의 동상(앨라배마 주 버밍햄 소재) [출처: Twitter, @BrittanyDtvNews]
BLM 시위대에 의해 끌어내려진 찰스 린의 동상(앨라배마 주 버밍햄 소재) [출처: Twitter, @BrittanyDtvNews]
 

 

그간 남부연합 기념물을 지지해온 사람들은 이 기념물이 인종주의의 옹호와는 무관하며, 단지 내전 동안 사망한 남군 희생자를 기리는 목적을 갖는다고 주장해왔다. 기념물 건립을 주도해 온 대표적인 단체 중 하나는 United Daughters of the Confederacy (UDC)였다. 이는 1894년에 남부의 백인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기념물이 전사자를 추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는 이들의 주장은 경험적 근거에 의해 논박되고 있다. 그중 두 가지를 지적해두자.

 

첫째, 기념물의 건립 시기는 지지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민간 씽크탱크인 Southern Poverty Law Center (SPLC)는 남부연합 기념물에 관해 가장 방대하고 체계적인 데이터를 수집해 운영해오고 있다. 이 데이터에 따르면, UDC를 중심으로 기념물 건립 사업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된 시기는 20세기 초, 구체적으로는 1910년 전후였다. 이후로는 1920-30년대와 1960년 전후가 또 다른 피크를 이루지만, 그 규모는 20세기 초보다 훨씬 작다.  그런데 이 세 시기가 모두 앞서 언급한 내전 이후 민권운동이 정점에 이르는 시간대에 속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내전 이후 남부는 이른바 ‘재건기’(Reconstruction, 1867-1877) 동안 흑인의 참정권 보장을 비롯해 급진적 개혁을 시도하지만, 이러한 흐름은 19세기 후반 이후 완전히 전도된다. 백인 정치인들이 다시 남부 주 의회와 행정부를 장악하면서, 흑인을 제도적ㆍ법적으로 완전히 배제하는 전략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른바 ‘짐 크로우’(Jim Crow) 체계라 불리는 인종주의적 정치 질서가 구축되었다. 앞서 제기한 질문, 즉 노예제 철폐를 주장한 북군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내전의 종식 이후 왜 미국 사회에 인종차별이 지속하였느냐는 의문이 풀리는 지점 역시 여기다.  이렇게 복구된 정치 질서를 상징적 차원에서 뒷받침했던 중요한 장치 중 하나가 남부연합 기념물이다. 일례로, 미시시피주 해티스버그(Hattiesburg)에 있는 남부연합 기념물은 UDC에 의해 1910년 10월 13일에 세워졌다. 내전 희생자를 추념하기 위해서였다면 기념물은 종전 이후인 1870년대를 전후로 주로 만들어졌어야 타당하다. 하지만 실제 건립 시기는 남부에서 백인우월주의(white supremacy)가 정치적으로 재확립되는 시점, 또는 역으로 말해 1960년대처럼 기존 질서의 위기에 대응해야 할 필요가 생겼을 시기와 부합한다. 요컨대, 이는 기념물이 백인우월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정치 질서를 유지하는 데 복무했다는 것을 드러낸다.

 

미시시피 주 해티스버그 소재 남부연합 기념물 [출처: Howard Blount / Backroad Planet]
미시시피 주 해티스버그 소재 남부연합 기념물 [출처: Howard Blount / Backroad Planet]
 

 

둘째, 새롭게 발굴되고 있는 자료들은 기념물의 인종주의적 의미와 목적을 좀 더 명시적으로 확인해준다. 다시 미시시피로 돌아가 보자. 미시시피 대학(University of Mississippi) 교정에는 대표적인 남부연합 기념물이 서 있다. 대학의 별칭인 ‘올 미스’(Ole Miss)가 흑인 노예들이 주인의 부인을 부를 때 쓰던 표현일 만큼, 이 지역의 인종주의의 그늘은 넓고도 깊다. 미시시피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인 앤 트위티(Anne Twitty)는 교직원 및 재학생들과 함께 이 기념물을 철거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1906년 5월 10일에 열린 기념물 제막식에서는 당시 변호사이자 주지사 후보였던 찰스 스콧(Charles Scott)이 연설을 했다.

 

트위티는 스콧의 연설에 주목했는데, 연설문의 원문 전체를 검토한다면 당시 기념물에 부여된 정치 사회적 의미를 더욱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12일, 마침내 그녀가  1897~1957년 동안 발행된 옛 신문 <Vicksburg Herald>에서 찾아낸 스콧의 연설문은 그 판단이 옳았음을 보여주었다. 제막식 연설에서 스콧은 남부연합 군인들의 용맹을 칭송하는 동시에, 노예제는 남부연합의 대의(cause)에 비추어보면 “사소한 일”(mere incident)에 불과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급격한 개혁이 일어났던 재건기 동안 “앵글로-색슨 문명을 지키려 했던” 남부연합 지지자들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이제 기념물의 인종주의적 함의는 더 감추기 어려워졌다. 같은 달에 대학 이사회가 기념물의 이전을 승인하면서, 이는 7월 14일에 대학 부속 묘지로 옮겨졌다.

 

BLM이 남부연합 기념물의 철거에 뚜렷한 동력을 부여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예컨대, 한 조사에 따르면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이후 7월까지 적어도 104개의 남부연합 관련 상징물이 제거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BLM의 반향은 더욱 근본적인 성찰로도 나타났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뿌리 깊은 인종주의는 미국이라는 국가 자체를 정초해온 이데올로기다. 워싱턴 DC의 연방의회 의사당(The Capitol) 내에 있는 National Statue Hall Collection (이하 컬렉션)은 이 주제를 다루기에 적절한 또 다른 기념물이다.

 

미시시피 대학 소재 남부연합 기념물 [출처: Rogelio V. Solis / AP)
미시시피 대학 소재 남부연합 기념물 [출처: Rogelio V. Solis / AP)
 

 

이 컬렉션은 미국의 각 주를 대표하는 100기의 조각상을 전시하고 있다. 홀 자체에 전시되고 있는 조각상은 총 35기이며, 나머지는 의사당의 방문자 센터(Visitor Center)를 비롯해 건물 전역에 배치되어 있다.  BLM 운동의 국면에서, 이 컬렉션에도 남부연합과 관련된 13명의 동상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기왕의 철거 논쟁을 가열시켰다. 하지만 좀 더 깊은 고민은 컬렉션에 포함된 또 다른 인물에서 시작된다. 로드아일랜드 출신의 나다니엘 그린(Nathanael Greene, 1742-1786)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독립전쟁(Independence War, 1775–1783) 당시 장군으로서 미국의 승리에 이바지했다.

 

그린은 1870년에 이 컬렉션에 기념물이 안치된 최초의 인물이다. 독립전쟁에서의 활약을 고려하면, 국가적 위인을 기념하는 공간에 그가 포함된 것은 놀랍지 않다. 하지만 그의 행적이 갖는 함의는 우리에게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종전 이후 그린은 전공을 인정받아 조지아주와 사우스캐롤라이나주로부터 쌀 플랜테이션(plantation) 대농장을 부여받는다. 고향인 로드아일랜드가 이미 노예제를 점차 폐지해 나가던 시기에, 그는 조지아로 이주해 흑인 노예를 사서 대규모 농업을 운영했다. 말하자면, 그는 북부 출신이면서도 노예제에 근거한 남부 경제에 편승해 막대한 부를 창출할 기회를 얻었다. 19세기 후반의 정세에서, 그의 이러한 경력은 내전 이후 통합을 추구하던 미국 정부의 정책 기조에 부합했다.

 

다시 하나가 된(United) 미국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안치하는 자리에 그린이 첫 번째로 선정된 것은 그가 통치 엘리트인 “북부 백인과 남부 백인”, 즉 “분파 간 화해”(sectional reconciliation)를 상징하는 탁월한 모델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그린의 컬렉션 입성은 남부연합의 상징인 로버트 리(Robert E. Lee)의 입성을 충분히 예고하는 것이었다. 1909년 버지니아주가 추가한 리 동상은 옛 남부연합의 일원이 컬렉션을 위해 제작을 의뢰한 최초의 사례였다. 이렇게 정초 된 미국의 ‘새로운’ 정치적 상상계는 강고한 인종주의적 질서를 구축해왔다. 물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여성과 아메리칸 원주민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이후 컬렉션에 추가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이 공간에서 흑인, 동양계 미국인, 무슬림, 성 소수자를 찾을 수 없다.

 

워싱턴 DC에 위치한 연방의회 의사당 내 National Statue Hall Collection (출처: The Architect of the Capitol) 워싱턴 DC에 위치한 연방의회 의사당 내 National Statue Hall Collection (출처: The Architect of the Capitol)
워싱턴 DC에 위치한 연방의회 의사당 내 National Statue Hall Collection (출처: The Architect of the Capitol)

 

2020년 5월은 제도화된 인종주의 체계를 해체하려는 중요한 시도로서 또 다른 BLM 운동이 촉발된 시공간으로 미국인의 역사에 기억될 것이다. 이 역사에 관한 한 가지 독법은 더욱 평등한 사회를 꿈꾸는 이들이 그 체계를 떠받쳐온 정치적 상상계를 어떻게 해체하고자 했는지 살펴보는 일이다. 우리가 남부연합 기념물을 둘러싼 쟁점들을 다룬 까닭 역시 여기에 있다. 매년 5월은 또한 국제박물관협의회(ICOM)가 세계박물관의 날(International Museum Day)의 주제를 발표하는 시기다. 올해 주제는 ‘평등을 위한 박물관: 다양성과 포용성’이었다. BLM이 백인우월주의와 인종차별을 지지해온 기념물에 대한 문제 제기를 끌어냈다는 점에서, 이 주제가 갖는 무게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이제 미국은 이 나라의 “제도는 유색인종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Martin 2020)라는 주장에 반박할 수 있는 자신의 역량을 검증할 중대한 시험대에 다시금 서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