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남북교류협력 :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발굴조사를 보다 ①

조은경_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기획과

 

개성 고려궁성 만월대(滿月臺) 남북 공동 발굴조사 구간 전경
개성 고려궁성 만월대(滿月臺) 남북 공동 발굴조사 구간 전경

 

남북교류협력에서 ‘문화재’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남-북 간의 교류협력에서 문화재는 깊은 울림을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형성된 1990년대 이후로 지난 30여 년간 남북교류의 격랑 속에서 <문화재 남북교류협력>은 다양한 시도와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지속하고 있다. 그 의미와 성과는 교류당사자인 남과 북의 국민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확산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문화재 분야의 남북교류협력사업으로 언급되는 것은 <개성 만월대(開城 滿月臺) 남북공동발굴조사>이다. 이 사업은 전체 남북교류에 있어서 단일사업으로 가장 오랫동안 진행되고 실제적인 성과가 드러나는 사업으로 손꼽는다.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발굴조사는 2007년 제1차 조사를 시작으로 2018년 제8차까지 10여 년 동안 조사가 이어졌다. 예상치 못한 대내외 정세 변화로 인해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면서 현재까지의 실 조사일수는 540일에 불과하다. 현재까지 공동조사단은 애초 양측이 협의했던 개성 만월대 서부 건축군 33,000㎡의 약 60% 정도를 조사하였다. 따라서 조사는 아직 미완이며, 현재진행형이다.

 

2018년 조사 당시, 대북제재로 조사 장비의 반입이 극히 제한적으로 이루어져 수작업으로 진행하느라 조사단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막연하게 예상했던 대북제재의 여파는 사업진행자인 남북역사학자협의회와 문화재청, 통일부에 가장 큰 현안으로 대두하였다. 8차 조사 현장에서 철수하자마자 9차 조사를 대비하여 조사 장비 반입에 대한 UN 안보리 대북제재 면제부터 진행하였다. 이렇게 정신없이 준비했던 제9차 조사는 2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진행한 북미회담의 결렬로 시작도 하지 못한 채 1년도 넘게 시간이 흘러버렸다.

 

개성 고려궁성 만월대(滿月臺) 남북 공동 발굴조사 구획도
개성 고려궁성 만월대(滿月臺) 남북 공동 발굴조사 구획도

 

‘그럼 뭐가 달라? 사업명만 같을 뿐이고 남북관계가 어려우면 못하는 것은 똑같은데’.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같지 않다. 동일한 명칭을 갖는, 하나의 사업이 이루어가는 영역과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노력이 의미 있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작다면 작은 하나의 사업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문화재’와 ‘조사연구’가 갖는 속성, 그리고 ‘사람 중심’과 ‘연계 확장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의 「문화재보호법」과 북한의 「민족유산보호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문화재(민족유산)의 정의를 살펴보면 흥미롭게도 ‘역사적‧예술적‧학술적 또는 경관적 가치’를 갖는 것으로 동일하게 서술되어 있다. 단어까지 같게 서술된 것은 2019년 최근의 상황이지만, 문화재에 대한 공통의 개념과 인식은 문화재 교류협력을 논의할 때 세부적인 사업의 의의와 방향 설정, 사업 성과의 평가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발굴조사는 고려 궁궐유적의 조사를 통하여 민족 공동의 유산에 대한 가치를 찾아내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 설정에 남과 북의 이견이 없다는 것은 사업추진의 동력이 될 수 있다. 북한의 고고학자 손수호는 ‘고려왕궁 만월대에 대한 북남공동발굴정형과 그 의의’(손수호, 조선고고연구, 2016년 4호)라는 제목으로 북과 남의 고고학자들과 여러 역사학자가 힘을 합쳐 진행한 만월대 서부건축군 유적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발굴 사업 현황과 학술적 의의, 공동조사가 역사고고학 분야 북남협력의 상징으로서 학술교류사업의 큰 장을 마련하였다는 긍정적 평가를 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 역시 문화재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관점이 작용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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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조사연구’는 장기간의 추진을 의미하는데 현장에서의 조사연구를 시작으로 다양한 후속 심화연구로 이어진다. 현장에서의 유구 확인과 유물의 수습, 기록화, 용도와 구조의 추정, 문헌 기록 등과의 비교 등이 일차적으로 이루어진다. 현장조사연구 결과는 남북공동조사단의 의견으로 같이 남과 북에 공개되어야 한다. 따라서 현장에서 연구자들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는데 늘 마지막에 하게 되는 얘기는 더 해봐야겠다는 말이다.

 

“아직 그렇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섣부르고, 더 해봐야 알지 않겠습니까.”

“이 부분은 다음 조사 때 구역을 확장해서 어떻게 연결되는지 봐야겠습니다.”

 

조사연구라는 특성은 다음 현장을 기약하게 만들고, 숙제를 만들어낸다. 현장에서 철수하고 나면 조사자료를 정리하고 행정절차를 마무리하는 정도에서 명목상 사업이 마무리된다. 그러나 고려 궁궐의 면모가 밝혀질수록 궁금증은 늘어가고, 후속 연구과제는 쌓여만 가고 있다. 예를 들어 2018년 조사에서 확인된 대형계단(폭 12.65m, 높이 5.07m)은 중심건축군과 서부건축군을 연결하는 것으로 조사단에서는 ‘황제의 길’이라는 별칭을 붙였을 만큼 중요한 동선에 자리한 시설이다. 그런데 이 계단의 상부에는 출입문이, 하부에는 배수로가 있는 관련 유구(遺構)들이 확인되었다. 실제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를 해결하려면 당시 건축의 구조, 주변 건축과 시설의 배치와 동선, 왕실의 의례행사 등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렇게 조사연구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고려와 고려 궁궐에 관한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개성 만월대 발굴이 시작된 후 다양한 학술연구들이 촉발되고 진전되었다. 실제 고려 궁궐건축의 복원적 시도를 포함하여 도성인 개경과 당시의 정치, 사회, 문화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고려에 관한 연구를 진전시키는데 이바지하고 있다.

 

 

황제의 길_회경전 북서편 대형계단(2018)
황제의 길_회경전 북서편 대형계단(2018)

 

발굴조사는 이제 종합정비와 보존처리, 공동학술연구로 조사연구 자체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2018년 조사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남과 북 모두 건축연구자들이 참여하여 중심건축군을 포함한 만월대 전체의 정비를 위한 유구 현장조사를 시도하였다는 점이다. 발굴조사구역 외의 이동이나 활동이 매우 제한적이었던 이전의 조사에 비교하여 2018년 조사단들은 창합문(閶闔門)이나 회경전(會慶殿) 계단 등 중심건축군의 유구 현황에 관해 조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발굴조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하고 전체 유적을 정비하는 일은 새로운 프로젝트의 시작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있는 조사연구 분야의 확장이다. 누군가는 도대체 이 사업이 언제 끝나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발굴조사도, 정비도 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고려 궁성에 관한 조사연구가 끝이 있겠는가.

 

다음으로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조사가 갖는 독특한 특징은 사람, 즉 공동조사단이라고 생각한다. 흙을 제거하고 유구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부터 토층을 읽고, 유물을 분류하고, 유구를 조사하고 기록하는 것 모두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공동조사단은 현장조사 기간 매일같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현장조사를 함께 진행할 수밖에 없다. 물론 약간의 시간은 필요하다.

 

“이 시굴갱(試掘坑) 3개소는 남측이 하시오. 저쪽 시굴갱 3개소는 우리가 하겠소.” “동의합니다.”

 

시작은 그랬다. 시굴갱을 나누고 조사가 시작된다. 곧 석축이며 계단이며 유구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한쪽의 시굴갱에서 유구가 드러나면 다른 한쪽이 다가오기 마련이다.

 

“뭐가 나왔습니까?”“회경전 북회랑 기단면 같은데, 무너진 모습이 좀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여기 먼저 좀 속도를 내야겠는데. 우리 쪽 사람을 좀 더 붙이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더는 남과 북, 각각 조사가 아닌 공동조사가 비로소 시작된다. 어색함은 3일이면 충분했다.

 

필자는 제8차 조사에 참여하여 50일간의 공동조사 경험이 전부에 불과하지만, 현장에서 느꼈던 유대감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만약 오늘 다시 공동조사가 진행된다면 어제 헤어졌다가 만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고려 궁궐에 관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 한 장소에서 짧게는 20여 일, 길게는 6개월간 어깨를 부대끼고 머리를 맞대며 조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공동조사는 다른 어떤 남북교류보다 ‘접촉과 만남’이라는 실체를 가지고 있다. 남북교류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사람과 사람의 교류와 연대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조사는 가장 기본적이지만 가장 강력한 교류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지속가능한 남북교류협력 :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발굴조사를 보다> 칼럼은 다음호(260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