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테크놀로지에서 박물관 콘텐츠로

전배호_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전문경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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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 처음 입사했을 당시 한 학예사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전시실 안에서는 유물만 보여야 한다.”국립중앙박물관이 경복궁에 있을 그 당시에는 그 말이 맞았을지 모른다. 전시실에는 유물과 패널 그리고 설명카드만 존재했었으니까. 하지만 2020년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은 오늘날 전시실에 유물만 보여서는 관람객의 외면을 받을지도 모른다. 박물관은 과거 유물의 수집, 보존, 연구, 전시 등의 전통적인 역할에서, 현재는 관람객과 소통하고 감동을 주는 공간으로 그 개념이 확장되어 다양한 표현 방법과 함께 사람들이 쉬고 문화를 향유하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에 맞춰 박물관 전시에서도 관람객의 행동과 상황까지 고려한 연출요소로 디지털미디어를 주목하고 있다.

 

그렇다면 박물관 전시에서 디지털미디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디지털미디어를 통해 전시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데 전시품과 패널 등에만 의존하지 않고 각종 미디어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다양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전시실 도입부나 하이라이트 공간에 독립적으로 디지털미디어를 구현하여 전시 전체의 인상을 나타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별도의 텍스트 설명 없이도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강력한 감성 소통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 전시에서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홍보나 뮤지엄마케팅의 수단으로써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포토존 성격의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공간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프랑스 파리(Paris)에 자리한 케 브랑리 박물관(Musée du Quai Branly, Paris)
프랑스 파리(Paris)에 자리한 케 브랑리 박물관(Musée du Quai Branly, Paris)

 

도입부 공간에 디지털미디어를 활용한 대표적 사례로 프랑스 파리(Paris)에 자리한 케 브랑리 박물관(Musée du Quai Branly, Paris)이 있다. 이 박물관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이 설계한 공간으로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시아, 아메리카의 원시예술을 전시한 박물관이다. 전시공간의 주된 콘셉트는 토속 유물이 숲속 정원 안에 어우러져 있는 연출로 전시 도입부에는 숲으로 이어지는 강물(The River)을 표현한 찰스 샌디슨(Charles Sandison)의 미디어아트 작품이 설치되어있다. 관람객이 경사로를 따라 올라갈 때 단어가 강물처럼 흘러 내려오며 전시에 대한 기대를 고조시키고, 박물관의 소장품과 연관된 단어로 표현한 디지털 이미지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되어 각종 상황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화한다. 이러한 디지털미디어는 전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전시공간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상징을 동시에 보이는 역할을 함으로써 그 내용을 시각적, 감성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측면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 하이라이트 전시공간에 디지털미디어를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 강산을 그리다(2019.09.30.~10.20.)>를 들 수 있다. 조선시대 화가의 시점에서 실경산수화의 제작 방식 등을 살펴보는 전시로 화가가 우리 산수를 기행 하며 그림을 구상하는 과정이 중요 포인트이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하이라이트 공간에 대형 폭포 미디어 파사드를 구현하여 관람객에게 마치 실제 폭포를 바라보는 듯한 현장감과 함께 전시가 지닌 메시지를 전달하는 시각 매체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 강산을 그리다(2019.09.30.~10.20.)>

 

둘째, 재현 연출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관람객은 실제로 갈 수 없는 역사적 장소를 장소 재현을 통해 가상이지만 방문하고 있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재현 연출로 사라진 문화재의 모습이나 역사적 장소 등을 디오라마 같은 축소 모형이나 실내장식만으로 표현했다면, 최근에는 역사적 사건을 이야기를 만들어 전달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구성하고 다양한 디지털미디어를 복합적으로 사용하여 마치 현장에 와있는 듯한 현실감과 몰입감을 주는 재현이 가능하다.

 

디지털미디어 재현 연출의 대표적인 해외사례로 네덜란드 아른헴( Arnhem)에 자리한 오픈에어뮤지엄(Nederlands Openluchtmuseum)을 들 수 있는데 네덜란드인의 일상모습을 볼 수 있는 박물관이다. 재현 연출한 공간은 네덜란드로 이주한 터키인들의 삶을 보여주는 전시관으로 TV, 가구 등으로 과거를 재현한 실내공간에 프로젝션 매핑(Projection Mapping) 영상을 투사하여 실감 나고 흥미로운 공간으로 연출하고 있다. 과거 터키인들이 생활한 공간과 이야기를 재현하기 위해 아날로그 방식으로 표현한 사물 위에 그들의 생활 모습을 디지털 기술로 결합하여 새로운 방향과 흐름의 전시연출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 전시사례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했던 특별전 <아라비아의 길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와 문화(2017.05.09.~08.27.)>를 들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전시로 대형석상과 파노라마 영상매체를 사용하여 고대도시를 탐험하는 듯한 현장감 있는 공간을 연출하였다. 실감 나고 경이적인 환경을 구현하기 위해 디지털미디어 공간은 확장하는데, 기존 스크린의 고정된 사각 프레임에서 벗어나 관람객에게 더욱 확장된 시야를 제공하여 가상과 실재(實在)의 경계가 사라진 새로운 차원의 경험을 제공하였다. 이렇게 디지털미디어를 통한 재현 공간연출은 대형화, 입체화, 가상현실화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아라비아의 길-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와 문화-(2017.05.09.~08.27.)>

 

셋째, 디지털 체험에 효과적인데 전시내용을 디지털미디어와 융합하여 체험을 통해 관람객의 전시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자극하고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여 전시의 정보 전달력을 높일 수 있다. 디지털미디어의 출현으로 단순하게 전시물을 관람하던 것에서 상호작용하는 인터랙티브 커뮤니케이션(Interactive Communication)의 과정으로 바뀌고 있으며 빠른 시간 안에 관람객과의 상호소통 효과를 높이고 있다.

 

국립핀란드박물관의 선사(Prehistory)실에 있는 디지털 체험물의 사례를 보면 전시되어있는 반지 유물의 이미지를 모션 센서(Motion Sensor)를 사용하여 체험자 손에 합성되어 실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디지털 체험물을 두어 관람객에게 재미있고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국립민속박물관이 이탈리아 로마에서 개최했던 특별전 <한국 밥상으로의 초대> 展은 한국인의 식문화를 소개하는 전시로 외국인에게 한국 전통 상차림을 보여주는 인터랙티브 미디어테이블(Interactive Media Table)을 설치하여 한식의 음식 재료 다듬기부터 조리, 상차림 과정을 알기 쉽게 체험하게 꾸몄다. 디지털미디어를 통한 이런 다양한 체험 연출은 즉각적이고 직관적인 감각을 부여하여 공간과 관람객들 간에 상호작용을 더욱 촉진 시키는 역할을 한다.

 

국립민속박물관 특별전  인터랙티브 미디어테이블(Interactive Media Table)
국립민속박물관 특별전 <한국 밥상으로의 초대> 인터랙티브 미디어테이블(Interactive Media Table)

 

지금까지 박물관 전시연출에서 디지털미디어로 활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방법들을 살펴보았다. 과거 지식전달을 목적으로 획일화하고 정형화된 박물관 전시에서 벗어나 이제는 다양한 분야와의 융합과 응용을 통해 차별화된 방식과 표현으로 창조적인 전시연출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최근 박물관에서도 실감형 디지털 콘텐츠 사업으로 많은 예산을 들여 AR, VR, 프로젝션 맵핑, 3D 홀로그램 등의 다양한 디지털 기술들을 구현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박물관에서 고차원적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미디어만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디서도 볼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유일한 아날로그적 박물관 콘텐츠와의 융합과 확장을 통해 박물관만의 디지털 콘텐츠로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박물관의 가치를 높이고 관람객이 접근하기 쉬운 친근하고 미래지향적인 공간으로 새롭게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