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왕도의 위용, 국립익산박물관 이야기

신상효_국립익산박물관 관장

 

국립익산박물관과 익산 미륵사지 전경
국립익산박물관과 익산 미륵사지 전경

 

백제고도(百濟古都) 익산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보존·전시·교육하는 국립익산박물관이 오랜 준비 끝에 지난 2020년 1월 10일(금) 마침내 문을 열었다. 2009년 1월 미륵사지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고 2015년 7월 ‘백제역사유적지구(Baekje Historic Areas , 百濟歷史遺跡地區)’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후, 같은 해 12월 미륵사지유물전시관을 국립으로 전환한 지 4년 만이다.

 

국립익산박물관은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 쌍릉, 제석사지 등 익산을 중심으로 한 전라북도 서북부의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수집・보존・조사・연구·전시・교육하는 복합문화공간의 역할을 지향한다. 삼국시대 불교사원 중 최고를 자랑하는 미륵사지 남서편에 자리한 국립익산박물관은 연 면적 7,500㎡, 전시실 면적 2,100㎡의 규모로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계획하여 지하 2층, 지상 1층 규모로 건립한 유적밀착형 박물관이다.

 

국립익산박물관 상설전시의 핵심은 미륵사지(彌勒寺址)이다. 현재 미륵사지 출토품 23,000여 점을 비롯하여 전북 서북부의 각종 유적에서 출토된 약 30,0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상설전시실에서는 국보 1건 1점 및 보물 2건 10점을 포함한 3,000여 점의 전시품을 3개의 전시실로 나누어 각종 영상과 모형으로 선보이고 있다.

 

사진2) 왕궁리오충석탑 사리장엄구
사진2) 왕궁리오충석탑 사리장엄구

 

도입부에 들어서면 밤하늘에 빛나는 유성처럼 친근하게 맞아주는 유물이 하나 있다. 이 유물은 미륵사지석탑 사리공에서 나온 금제 사리내호로 국립익산박물관 브랜드의 핵심이다. 금제 사리내호의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축소된 왕궁과 함께 백제의 한성에서 익산까지의 머나먼 여정을 영상으로 전한다.

 

상설전시 제1실 “익산 백제”에서는 백제가 준비한 미래의 땅 익산, 왕궁에 담은 무왕의 꿈이 주제이다. 왕궁리유적(사적 제408호), 제석사지(사적 제405호), 쌍릉(사적 제87호) 등은 모두 미륵사 창건 전후에 건설된 곳으로 가장 완숙하고 우아한, 그리고 새로운 기술적・문화적 성취를 내포한 유적이다. 익산 백제의 완벽한 왕궁으로 알려진 왕궁리유적의 전시 코너에서는 축소된 왕궁유적을 모형으로 볼 수 있고, 조경석, 도가니, 토기, 문방구 등으로 왕궁의 정원과 공방, 관료들의 식탁과 업무공간을 재현했다. 또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국보 제123호) 구성품 전체가 발견된 지 55년 만에 고향 땅 익산에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사진 2).

 

왕실 사원 제석사지 영역에서는 최근 출토되어 처음으로 전시되는 소조 승려상과 악귀상을 접할 수 있다. 이어지는 쌍릉 공간에는 대왕릉의 봉분으로부터 떼어온 대형 판축 토층과 실제 크기의 돌방무덤 모형이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발굴된 후 만 102년 만에 세상에 공개된 대왕릉 출토 나무널은 1실에서 반드시 관람해야 할 전시품이다(사진 3). 1실을 마무리하는 공간에서는 익산 연동리 백제 석조여래좌상(보물 제45호)의 유실된 얼굴 부분을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모형과 미디어 매핑(Media Mapping) 기술로 가상 복원했다.

 

사진 3) 익산 쌍릉 목관
사진 3) 익산 쌍릉 목관

 

전설이 서려 있는 상설전시실 제2실 “미륵사지”는 국립익산박물관이 내세우는 핵심 전시실이다. 입구는 마치 큰 건물 속으로 들어가는 착각을 주는 치미가 양쪽에 우뚝 서 있어 웅장한 느낌을 관람객에게 전달하고 있다. 백제부터 조선시대까지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유물과 발굴자료를 중심으로 복원한 모형과 영상을 통해 자세하게 설명하며 미륵사지가 주는 여유도 느낄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미륵사지는 백제 무왕(武王, 재위 600~641)의 통치기에 창건되었다. 고대 삼국의 수많은 사원 중에서도 최대 규모로 알려져 있다. 신라의 삼국 통일 후에는 오히려 사세가 더욱 커졌다. 나아가 조선 시대 전기까지도 그 법등을 이어갔으니 미륵사의 역사는 가히 천 년을 헤아린다. 지난 세기 국립문화재연구소 등의 미륵사지 발굴조사 기간은 장장 40년(1980~2019)에 달했고, 발굴유물은 국립익산박물관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 소장되어 전시와 연구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미륵사지를 대표하는 전시품은 백제 불교 미술품의 최고봉인 미륵사지석탑 출토 사리장엄구다(사진 4). 기해년(639) 정월에 무왕의 아내인 사택왕후(沙宅王后, 생몰년 미상)가 발원(發願)해서 석탑을 건립했다는 금제사리봉영기(金製舍利奉迎記)는 물론이고, 사리를 담았던 유리제 사리병, 금제 사리내호 그리고 금동제 사리외호는 백제 사리신앙의 결정체이자 금속공예의 진수다. 사리장엄구와 함께 심주석 안에 봉안된 여러 공양물을 감쌌던 비단과 금실의 조각들은 이번 상설전시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또 사리장엄구 전시 공간 위에는 미륵사지석탑을 새롭게 해석한 현대미술품(김병주 작, <모호한 벽: 익산 미륵사지석탑>)을 설치하여 관람객이 석탑 공간 안으로 걸어 들어가 사리장엄을 친견하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연출했다.

 

사진 4)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구
사진 4)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구

 

이밖에 건축과 토목에 대한 전시 영역에서는 목탑과 석탑의 기단부를 단단하게 다져 쌓은 토층이나 백제부터 조선시대까지 미륵사에서 사용된 다양한 수막새와 역시 최초 공개품인 동승방에서 출토된 창문틀 등을 감상할 수 있다. 또 예불과 강경에 대한 코너에서는 금당과 불단을 장식했던 그림이 그려진 벽체 편이나 금동제 향로(보물 제1753호), 청동제 보살 손, 청동제 정병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일상생활용 토기 그릇이나 수행과 음다의 도구였던 중국 도자기와 고려청자도 빼놓을 수 없다.

 

상설전시 제3실은 익산을 중심으로 한 전북 서북부의 “역사문화”를 알 수 있는 공간이다. 통사(通史) 전시라 하면 이른 시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국립익산박물관 상설전시실은 조선 시대로 시작해 선사시대로 맺는다. 관람객이 더 익숙한 유물부터 먼저 접할 수 있도록 구성한 배려이다. 그리고 우리 역사 속에서 익산문화권이 빛나던 시기를 엄선하여 주제별로 구성하였다.

 

조선 시대 익산의 인문지리적 환경을 보여주는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1864년) 등의 고지도나 「금마지」(金馬誌, 1756년)와 같은 문헌 자료와 군산 앞바다에서 출수 된 고려청자와 도기, 익산 신용리 가마터 출토 백제 토기 등을 바탕으로 문물 교류의 길목이자 문화 발전의 촉진 역할을 한 익산을 조명한다. 또 백제의 본격적 익산 경영 이전에 존재했던 지역 맹주들의 무덤인 입점리・산월리・웅포리 고분군과 기원후 3~4세기 마한 사회의 토기와 철제 무기류, 초기 철기시대의 청동제 의기 등을 차례로 선보인다.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인 입점리 1호분의 구조를 딴 입체 스크린에서는 금동제 관모와 금동제 신발 등이 발견된 계기와 함께 출토된 유물들을 소개하는 미디어 매핑(Media Mapping) 영상을 상영한다. 3실의 마지막에는 익산 지역의 토기를 높고 넓게 진열한 아트월(Art Wall)과 대형 에필로그 영상 공간으로 안배했다. 관람객은 이 에필로그 영상을 통해 무왕의 꿈을 박물관 전시실에서 감상하고 체험한다. 그리고 그 감동을 바로 옆에 자리한 실제 미륵사지 현장에서 다시 느낄 수 있다. 이는 유적밀착형 박물관인 국립익산박물관이 가진 특별함이다.

 

국립익산박물관 전경
국립익산박물관 전경

 

아울러 국립익산박물관은 개관 기념 특별전으로 “사리장엄 – 탑 속 또 하나의 세계”전을 개최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국립익산박물관의 대표 문화재인 백제 왕실 발원 미륵사지석탑 사리장엄의 의미를 되짚어보기 위해 기획하였다. 국보 제327호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장엄, 보물 제1925호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 등 우리나라의 왕실 발원 사리장엄 9구를 포함하여 총 15구의 사리장엄을 한자리에 모았다. 전시품은 국보 2건과 보물 8건을 포함하며 광주 서오층석탑에서 출토된 30여 과의 진신사리(眞身舍利)도 친견할 수 있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따로 전시하고 있어 함께 감상하기 어려웠던 경주 감은사지 서탑 사리장엄 외함(보물 제366호)과 동탑 사리장엄 외함(보물 제1359호)은 나란히 진열되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1월 10일 개관 이래 2월 23일까지 약 13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몰린 이번 특별전은 전시 기간 중 코로나-19로 인해 임시휴관이었던 점을 감안하여 오는 4월 26일까지 전시 기간을 연장하였다. 우리나라 사리장엄의 정수를 감상할 기회를 놓치지 말기 바란다.

 

특별전

 

세계유산 백제 역사유적지구 미륵사지 내 위치한 국립익산박물관은 개관과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도 있다. 바로 어린이박물관과 교육 시설, 보존과학센터로 거듭나기 위한 옛 전시관의 리모델링이다. 내년에 성공적으로 리모델링 사업이 완성되면, 백제고도 익산의 역사와 문화를 국내외 관람객에게 널리 전시·교육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행복과 만족을 드리는 문화기관으로 거듭날 것이다. 또한, 익산시가 추진하고 있는 ‘미륵사지 관광지 조성계획’에 따라 미륵사지 남쪽 108,743㎡ 지역에 전통문화체험관, 자연지형 녹지, 광장, 주차장 등을 마련하여 새 박물관과 연계한 각종 교육 및 문화행사가 가능한 복합 문화단지도 조성 중이다.

 

국립익산박물관은 금제사리봉영기의 생생한 기록에서도 드러나는 불법(佛法)의 보호 아래 왕실과 국가가 흥성하기를 바랐던 백제인의 염원이 서린 익산 땅에 마음을 담아 문을 열었다. 전시실에 선보이는 3,000여 점의 유물은 익산 백제의 본질에 가 닿기 위한 첫발이라고 할 수 있다. 국립익산박물관의 도전은 이제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앞으로 새롭게 써 내려갈 익산 백제 이야기에 큰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시기 바란다.